비 맞는 여자와 우산 없는 남자

<

연서님, 안녕하세요.
오랜만입니다.

《혀 달린 비》 리뷰 전해드려요. 써야겠다는 생각은 계속 해왔는데 다른 일들 때문에 미뤄지다 보니 이제서야 보내게 되었네요.

즐겁게 잘 봤어요. 보면서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이 무척 재미있었을거라 생각했습니다. 연서 님이 《꽃다발은 아직》의 소식을 알릴 때 '받아쓰는 마음으로' 차학경을 읽고 있다 말했었잖아요? 새로운 대화를 나눌 때나, 새로운 전시에 들어갈 때, 내가 모르던 무언가를 공부할 때 느껴지는 확장의 기쁨. 《혀 달린 비》를 준비하면서 그런 시간을 여러 날 보내셨을 거라 상상했어요.

《혀 달린 비》는 '세 명의 여성주의 시인 세실리아 비쿠냐, 차학경, 김언희에게서 영감을 받은 극장형 전시'이죠. 지하 1층 아트 홀에서 열렸고요. 공간까지 포함해도 작품의 수가 그렇게 많지 않았던 터라 감상 동선이 나름 생생하게 기억나네요. 바로 들어갈게요.

제가 이 전시에 몰입하기 시작했던 구간은 (전시의 구성과 가장 닮아있는) 나미라의 <테트라포비아>입니다.




2채널 흑백 영상과 거울로 이루어진 영상 설치 작품이죠. 영상 안에서도 화면이 여러 채널로 분할되어 있어 캡션 표기가 어떻게 되어 있을지 궁금했는데, 담백하니 2채널이더군요. 왼쪽 채널은 6분할, 오른쪽 채널은 4분할 되어 있고 각각 4개와 2개의 영상이 재생되고 있었습니다. 또 이 작품(뿐만 아니라 이번 전시에서) 가장 중요한 장치는 소리였는데, <테트라포비아>는 1채널 오디오였어요.

<테트라포비아>를 처음 맞닥뜨릴 때 저는 6채널이라는 정보량에 복잡함을 느끼며 탐색기를 길게 가졌는데요. 이 작품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6채널 영상이라는 과잉 정보를 분별하기'와 '1채널 오디오/소리를 어느 이미지에 붙여 감상할지 갈피를 잡기'라는 퀘스트를 수행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소리 역시, 단일 소스가 아니라 서너 가지 정도 되는 소스들이 반복되는 식으로 이루어졌더라고요. 크게 나눠보자면 다음 세 덩어리였습니다. (1) 라디오 프로그램 <굿모닝 팝스>(추정)의 2,30년 전 회차 중 일부 (2) 슬레이트를 치며 영단어를 발음하는 여자의 목소리 (3) 화염이 방화되거나 바람이 세게 불 때 나는 화르륵 소리 위 세 덩어리의 소리를 어떤 채널의 영상에 붙일 수 있을지 살펴보다 보니 각 채널마다 서로 관계 맺는 군집이 있다는 걸 파악했어요. 또, 각 군집은 소리 덩어리들과 거의 그대로 짝지어집니다.



(1) 굿모닝 팝스 <---> 극장의 두 사람




(2) 슬레이트 소리와 여자의 목소리 <---> 슬레이트 치는 여자와 그 영단어



(3) 화르륵 <---> 화염 방사하며 웃는 여자와 불타는 곰돌이



각 군집/그룹은 저마다의 온도가 분명했고, 여자가 등장했고, 그 당시에 어떤 소리가 재생되는지에 따라 다른 강조점을 띠며 활성화됩니다. Tetraphobia라는 제목처럼 음산한 금기를 풍기는 이미지들 중 제가 눈여겨봤던 건 (1)번이에요.

<굿모닝 팝스>의 DJ는 진행 멘트를 친 뒤 첫 번째 곡으로 Tony Bennett의 'I Left My Heart in San Francisco'를 들려주었는데요. 너무 찬찬하지 않은 재즈 리듬 베이스에 백인 할아버지의 색소폰과 같은 목소리가 널리 울리는 노래였습니다. 대충 제목을 보면 사랑 노래겠죠. 음악에 빠져들 때쯤 (1)번 그룹의 두 영상 중 오른쪽 영상을 봐보니, 두 명의 여자가 극장에 단독으로 앉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플래시가 터지듯 화면이 잠시 하얘지고, 두 명이었던 여자는 한 명이 됩니다.




그리고 의자 사이를 기어다니기 시작하죠.




(1)번 그룹의 왼쪽 영상은 여자가 의자를 건너며 스크린 앞에 도착하기까지의 모습을 클로즈업해 보여줘요. 하지만 '기어다닌다'고 했을 때 연상되는 야성성이나 급박함과 달리 그녀는 딱히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거나 빠른 속도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텔레비전에서 상영되는 애니메이션 방송에 홀린 듯한 아기처럼 평범한 속도로 전진하는데, 그 전진이 사랑 노래와 맞붙었을 때, 누군가와 함께 있다가 혼자가 된 사람의 헤매이는 몸짓으로 발라드스럽게 보였습니다. 아무것도 상영되지 않는 스크린을 눈앞에서 빤히 쳐다보는 뒷모습은 상영되어야 할 무언가를 기다리는 것처럼 보였고요.

허공을 응시하는 그 모습을 계속 바라보다가, 여자가 스크린 앞에 도착한 이후에도 오른쪽 영상이 풀샷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띄면서. 여자가 건너왔던 풍경인 극장 의자에 주목하기 시작했습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그 의자들 하나하나가 죽은 사람처럼, 혹은 그 사람들을 기리는 묘비 패처럼 보였어요. 그 여자는 묘비를 헤쳐 스크린으로 향하는 여자로 다시 보였고요.

그렇게 영상이 끝났습니다.





영상 속 여자와 극장 의자를 뚫어져라 쳐다본 저는 그 후 전시 공간인 아트 홀의 극장 의자로 눈을 돌렸습니다. 그 의자들을 영상 속 극장 의자의 실물인 양 보다 보니 거기에 앉았던 사람들의 흔적이 기운으로 느껴지더군요.

퇴장한 관객과 죽은 사람들이 씌워진 거무스름한 의자 너머에서, 하얀 배경을 등에 둔 <축제> 시리즈가 제 시선을 사로잡았습니다. 닥종이의 검푸른 색 자체는 배경색과 비슷하지만 그 뒤 하얀 배경과 조명의 조합으로 - 박제된 사슴 머리 다섯 개 마냥 - 존재감이 강렬했거든요.




차연서 작가의 아버지인 고 차동하 작가가 채색한 닥종이를 재료로 삼아, 법의학 책에 실린 시체들을 가위질로 필사한 동명의 콜라주 작품인데요. 하나하나 찬찬히 봐보겠습니다.

직사각형 모양의 닥종이 한 장이 하얀색 캔버스 위에 깔려있고 그 위에 특정한 형태로 오려진 또 한 장(이상)의 닥종이가 포개어 있습니다. 각각 산모 배 속에 있는 태아, 빗으로 하는 자위, 도깨비 가면, 그리고 마치 꽃잎처럼 절단된 두 손처럼 보이네요.

시체들은 닥종이를 가위로 자르는 방식으로 번역되었기 때문에, '시체'라고 하면 흔히 떠올릴 법한 누워있는 사람 형태나 비위가 상할 정도로 역한 이미지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축제>의 이미지에서 주의 깊게 바라보아야 할 점은 시체의 스펙터클한 생김새가 아니라, 그 떼몸들을 향한 작가의 시선(개입)이에요.

세빗 '딜도', '개'가 된 여자, '꽃다발'을 든 아이, 엉덩이 '커튼' 등의 제목을 보면 기존의 이미지들이 어떻게 변형되었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죠. (변형된 이미지가 아니라면 그건 그거대로 별일이겠고요.) 여성적 기표라고 불러볼 수 있을 법한 포인트들이 추가/부각되며 떼몸들의 젠더가 한 꺼풀 구체화됩니다. 이 점을 통해 저는 <축제>가 죽은 여자들의 세계라고 생각해요.




<축제>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작가의 필체죠. 이미지 전반에 우글거리는 윤곽선 처리도 그렇지만, 이미지 사이사이에 들어가 있는 네거티브 면이 저는 중요한 선택이라고 생각해요.

그 네거티브 면은 단순히 '이건 빗이다. 이건 손이다. 이건 엉덩이다.'라는 정보를 재현하는 기능적인 역할이나 화려한 기교의 선에서 그치지 않고, 이미지의 인상을 결정할 만큼 개성적인 요소거든요. 저는 위 사진에서 보이는 면들이, 법의학 책에 있는 시체들이 죽었을 당시 생겨난 핏자국을 작가가 씻기지 않고 입힌 채로 놔둔 결과라고 느꼈어요. 아마도 축제의 드레스 코드로써요.


또 하나 예의주시했던 점은 작품의 옆면입니다. 기본적으로 <축제>는 종이 두 개를 잇달아 붙인 평면 작업이잖아요. 그런데 두 종이의 모든 면을 딱 붙여 밀착시키지는 않았단 말이죠. 그렇기에 작품의 옆구리를 보면 종이와 종이 사이의 빈틈을 볼 수 있고, 저는 그 틈으로 공간의 공기가 들어간다고 생각했어요.

《모텔전: 눈 뜨고 꾸는 꿈》에서 처음 그 틈을 봤을 때는, 열려 있는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바깥 공기와 선풍기 바람의 서늘함이 스민다고 느꼈고, 이번 극장에서는 세실리아 비쿠냐의 소리인 <소리로 꿈꾼 비: 차학경에 대한 경의>가 드나든다고 느꼈습니다.

사실 제가 전시장에 입장했을 때 첫 번째로 향했던 작품이 <축제>였는데, 그 당시에는 <소리로 꿈꾼 비>가 아니라 <테트라포비아>가 재생되고 있었기 때문인지 <축제>를 별 감흥 없이 지나쳤거든요. 그러니까 <소리로 꿈꾼 비>를 들으며 <축제>를 다시 보기 시작한 것이죠. 소리가 축제를 활성화시켰기 때문에.



*


피오나 애플이 침 튀기고 늘어뜨리며 부르는 진혼곡 같았던 <소리로 꿈꾼 비>는 '극장형 전시'를 가능하게 만든 중요한 작품인데요. 그 소리를 위 작품들처럼 분석하기보다는 《꽃다발은 아직》부터 《혀 달린 비》까지 제가 느꼈던 갑갑함을 이야기하며 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저는 김언희 시인의 독자가 못 됩니다. 접속이 잘 안 돼요. 《캐리어즈》 아티스트 토크와 도록을 통해 김언희의 작품 세계를 처음 알았고, 그 시구에 빠져들어 『트렁크』와 『말라죽은 앵두나무 아래 잠자는 저 여자』를 충동 구매했습니다. 나도 그 허기를 갖고 있었으니까. 그 후 그 세계가 '여성적 그로테스크'라 칭할 만한 남성 (언어) 정육점 같다는 인상은 분명 '인지'하고 있지만, 감상의 차원에서 저는 그 세계에 저 자신을 의탁할 만큼 자유를 느끼거나 감복하지 않았습니다. 겉도는 거죠. 물론 '감탄'은 합니다. "징하네" 하고. 그리고 이 무감함은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엘렌 식수, 페터라니 아글라야 등에도 해당하는 거리감이에요.

반면 연서 님은 지난 개인전 《꽃다발은 아직》이나 《이 기막힌 잠》의 제목을 김언희 시인의 시에서 가져오셨죠. 이 외에도 작가로서 자신의 입장을 드러내는 장치인 작가의 말이나 전시 서문, 작품 크레딧 등에서 그 연루됨/연루되고자 함을 - 《혀 달린 비》가 그렇듯이 - 적극적으로 드러내시는데요. 저는 이런 선택들에서 단순한 팬심을 넘어 '내가 그녀들의 유산을 받았고, 잇는다'는 자긍심까지 느끼고는 해요. 그녀들의 이야기까지 포함하는 방식으로 자기 이야기를 하는 작가라고도 보이고요.

여기서 제 갑갑함은, 내가 그녀들의 세계에서 끊임없이 튕겨져 나온다는 겁니다. 김언희의 시에서도, 《꽃다발은 아직》의 서문에서도 저는 맴돌기만 하고 있어요. 오히려 연서 님이 '온갖 규칙 속에서 살았던 사람'이라고 묘사하신 연서 님의 아버지에 더 가깝다고 느낍니다. 그런 의미에서 《혀 달린 비》는 그 쾌를 감각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어 좋았지만, 끝맛이 씁쓸하더라고요.

자신의 미적 지향을 강하게 의식하는 동시에 형식적으로 아주 고집스럽게 벼려진 전시였기에 - 잘 만든 음료를 맛볼 때처럼 - 이런 생각도 하나 봅니다.

혹시 전시 전후로 하셨던 생각이나 전시 만든이들과의 교류에 대해 떠오르는 이야기가 있다면 (산 사람 죽은 사람 불문하고) 듣고 싶어요.

궁금쓰.

재훈 드림

버드나무 여신

차연서

2024.7.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