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먹어*

<

승아님, 안녕하세요.
처음 인사를 나눴던 때로부터 시간이 흘렀네요.

어느덧 여름입니다.
햇볕과 녹음, 에어컨 바람과 함께 무탈히 지내고 계시길 바라며 《Summerspace》 리뷰 전해드려요.





《Summerspace》는 지난 봄, 선유도역 인근에 위치한 Hall 1에서 열린 전시이죠. 전시를 보기 며칠 전에 친구와 함께 선유도 공원에 놀러 간 적이 있던지라, 그 기억과 함께 재방문하는 느낌으로 전시장을 향했습니다. 비가 많이 오던 일요일이었어요.

버스에서 내려 우산을 쓰고 걷다가 전시장 문을 열고 우산에 붙들린 빗물을 털고 있을 때, 지인과 인사를 나누고 있는 김유자 작가님과, 전시를 보고 있는 다른 관객들을 보았습니다. 간단하게 인사를 나눈 뒤 1층을 후다닥 훑고 계단 위로 올라갔어요.



촬영: 스튜디오 아뉴스




함혜경 작가의 <나의 첫사랑>이라는 영상 작품이 블루투스 헤드셋과 함께 루프 재생되고 있었죠. 이 작품은 (1) 여름의 풍경을 익명화해 담아놓은 무빙 이미지와 (2) 자신의 첫사랑에 대한 상념을 이야기하는 남자의 영어 목소리 그리고 한글 자막으로 이루어졌는데요.

처음에는 이 작품에 대한 인상이 좋지 않았어요. 동영상 + 낭독 + 자막으로 이루어진 '책 읽어주는 남자' 식의, 미술은 작고 의미는 큰 영상들이 연상되어 일차적인 거부감이 들었는데 그 내용을 또 지극히 개인적인 '일기' 투로 말하고 있었거든요. 지난 몇 년간 전시에서 영상을 보며 길러진 피로감이 소환되어 '아, 보기 싫다.'는 느낌이 금세 들어 찼는데요. 보다 보니 좋더라고요? ^^,,

그래서 '이렇게 상투적인 형식의 영상이 좋을 수가 있다고? 도대체 왜 좋지?'하는 의구심이 리뷰를 시작하기 전까지 계속 들었습니다. 음... 좋았던 이유를 찾아가기 위해 우선 <나의 첫사랑>의 (1) 무빙 이미지에 대해 먼저 말해볼게요.



<나의 첫사랑>, 2017 ©함혜경


대낮의 해변, 사람이 없는 전망대, 햇빛에 비쳐 반짝이는 잔물결
물이 다 빠진 신식 수영장, 알루미늄 손잡이와 파란색 콘크리트의 질감
비행기 안에서 바라보는 듯한 구름 낀 하늘



보통 미국 영화에서 씬과 씬 사이에 인서트로 등장할 법한 익명적인 화면, 비어있는 풍경을 모아놨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느 한 사람의 시선이 머무는 곳을 (이물감 없이) 깔끔하게 담아 보여주는 장면들이어서 보는 동안 눈이 굉장히 편안했어요.

보통의 일상, 거리에서 우리가 눈을 돌리는 곳에는 수많은 간판과 행인 그리고 길가에 버려진 쓰레기들이 있잖아요. 실제로 제가 사는 곳 앞에 있는 산책로에는 눈이 편안해질 만하면 '이곳에 경작하지 마십시오' 같은 철제 표지판이 한두 개씩 보이거든요? 그런데 <나의 첫사랑>의 화면에는 그런 이물질이 없습니다. (물론 공유지에 경작하면 안 되겠죠.)

요점은, 작가가 이 영상에서 이미지들을 세울 때 공간을 익명적으로 보여주는 데에 중점을 뒀다는 것이에요.



"커피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첫사랑을 떠올려 본다
10년이나 지난 이야기지만, 한때 우리는 정말 친한 사이였다
서로의 과거를 공유하고, 그것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 것으로 의리를 지켰다
삶에 대한 눈부신 열정으로 가득 차, 곁에 있으면 서로가 그런 사람이 될 것 같았는데"



프레임 안에서의 긴장을 다루는 대신에, 함혜경은 자막과 목소리를 통해 한 남자의 이야기를 선별된 이미지들과 함께 보여주는데요. 앞서 언급했듯이 그 이야기는 남성 화자의 상념(: 마음속에 떠오르는 여러 가지 생각)으로 보이며, 자신의 첫사랑이 중심 내용입니다.

제가 '상념'이란 단어를 사용한 이유는 남자의 이야기를 구성하는 문장들 역시 이미지처럼 익명화되어 있기도 하고, 구체적인 이미지를 묘사하는 데에 그리 적극적이지 않기 때문이에요. 이를테면 이미지를 직접적으로 묘사하는 단어나, 고유 명사가 거의 사용되지 않습니다. 앞서 인용한 네 문장을 보면 이미지화할 수 있는 부분이 첫 문장뿐인데, '기다린다'마저도 특정 포즈를 직설적으로 가리키는 단어는 아니죠.

이렇게 비어있는 그리고 비워놓은 문장과 이미지의 조합이 흐름은 있지만 건더기는 없는 빈 물살처럼 느껴져 관객의 상념이 올라타기 수월하다고 생각했어요. 주인공이 스토리를 끌고 가는 류의 영화를 볼 때, 관객은 자신을 그 인물에 투영하거나 그 인물의 등에 업히는 방식으로 감상을 하잖아요. 하지만 <나의 첫사랑>을 볼 때, 관객은 이완된 상태로 남성 화자의 독백을 듣다가 자신만의 앵커링 포인트에서 ("나 저 표현 뭔지 알아" 하면서) 몰입하기 시작합니다.

이때 영상 속 이야기와 관객 본인의 이야기의 관계가 보통 영화에서의 그것보다는 더 나란하다고 느꼈어요.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문화적 특색을 소거하고, 스토리의 단순성을 고집함으로써 '주인공들 마음속 그 정신적인 영역'**을 조명한 것이죠.

**작가의 말. 출처: https://www.sapy.kr/SC26_11


그리고 다른 작가들의 작업도 이와 비슷한 정도로 비워져 있다고 말할 수 있는데요. 김유자 작가의 작업부터 보겠습니다.



촬영: 스튜디오 아뉴스



<바닥에 글자를 만드는 밤>



<투명의 반복 D♭>



<투명의 반복 E>



<투명의 반복 D>



김유자가 본 전시에 선보인 <Cusp II>에서 '대상'이라고 부를 수 있을 법한 건 복층의 집, 프릴 장식의 상의, 철봉에 팔/오금을 걸쳐 거꾸로 매달려 있는 소년과, 방문에 손 하나를 갖다 댄 소녀 등인데요. 작가는 사진에서, 대상의 윤곽 전체를 보여주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어 복층의 집을 담은 <바닥에 글자를 만드는 밤>은 자욱한 안개가 집의 천장부를 가리고, 희뿌연 액자 색이 그 은신을 도와요. 인물이 등장하는 사진들은 사진의 프레임이 모두 무릎이나 팔에 걸쳐 크롭되어 있고요.

반례를 들어 부연해 보겠습니다.



<진주 목걸이를 한 아줌마, 1997년 3월 25일>, 1997 ©오형근



<Hiroko and Ken 1>, 2004 ©김옥선



<가나에서 온 레건과 선미 그리고 한국에서 태어난 아들, 서울>, 2021 ©최원준



한국에서 활동하는 기성 사진 작가들의 잘 알려진 포트레이트인데요. 자신이 주목하는 문화적 집단(ex. '아줌마', '국제 결혼 커플', '동두촌에 거주하는 아프리카인')에 소속된 사람들을 섭외하여 인물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눈코입과 옷차림을 높은 해상도로 촬영해 보여줍니다. 관객들은 해당 집단에 속한 구성원의 시각적 특징이 담긴 사진을 보고, 자신이 그 집단에 대해 알고 있던 선입견에 그 특징들을 대조하게 됩니다. 혹은 새로운 데이터로 입력하거나요.

이는 앞서 살펴본 <Cusp II>의 보여주기 방식과 참 다르죠.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Cusp II>가 흑백 사진이라는 점 역시 그러한 판단거리를 소거하는 데 일조하는 것 같아요. 이러한 선택/하지 않음을 통해 만들어진 장면들이 함혜경의 <나의 첫사랑>의 장면이 선별되는 논리와 궤를 같이한다고 느꼈고요. 이 방법론이 《Summerspace》의 기틀이자 미적 감수성이라고 읽힙니다.

이나하의 페인팅, '자국 회화' 연작 역시 그렇습니다. 김유자와 박보마의 작업이 갈비뼈처럼 공간 전반을 틈틈이 채울 때 이나하의 페인팅은 척추뼈처럼 감상에 묵직한 단차를 내죠.



촬영: 스튜디오 아뉴스






<나아가는 여자>라는 제목처럼 시원하고 청량한 작품이었는데요. 붓질의 밀도를 기준으로 페인팅의 화면이 나눠집니다. (1) 수영 동작이 일어나는 손/다리 부위 - 왼쪽/오른쪽 화면과 (2) 그렇지 않은 허리 부위 - 가운데 화면으로 구분할 수 있어요.

인물의 몸짓이 닿지 않고 물만 있는 면은 큼직한 붓질로 죽죽 긋고 넘어갔는데, 헤엄치며 물 안팎과 계속해서 부딪히는 부분은 보다 얇은 붓으로 짧게 짧게 같은 자리를 반복적으로 덧댑니다. 그렇게 켜켜이 쌓은 붓 터치 - 회화적 표현으로 고정된 형상을 흐리고, 움직임을 고정시키지 않는다고 보았어요. 형상을 깨뜨린다는 점에서 앞서 살펴본 작품들과의 공통감을 갖죠.

처음에 제목을 안 본 상태로는 사실 뭘 그린 건지 파악하지 못했는데, 박보마 작가의 사운드 <여름의 기쁨, 여자들과 그의 비용 - 멜로디를 위한 음의 조합>가 재생되자 <물 속에 앉은 여자>와 <물 밖으로 일어나려는 여자> 사이의 움직임이 눈에 그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촬영: 스튜디오 아뉴스


더 자세히 말하고 싶은데 이 작품들은 제가 오래 못 봐서 그러지 못하겠네요. 주로 벽면에 걸려있는 위 평면 작업들과 달리 박보마의 작업은 바닥 면이나 Hall 1의 기물들까지 침투해 그 유연함을 좀 더 너르게 퍼뜨린 것처럼 보였어요.

작품 이야기는 여기까지고, 기획자인 승아님께는 이 전시를 만들 때 염두에 두셨던 '여성성'에 관한 생각을 질문하고 싶어요. 제 눈에 이 전시는 여성성이라는 공기로 이루어져 있거든요. 시스젠더 여성의 몸/물질성이나 feminine하다, 여성스럽다는 표현을 포함해서 방법론적인 측면에서도요. 전시 포스터의 메인 이미지가 단발머리를 한 여성으로 패싱되는 얼굴인 것도 그렇고, 이 전시를 이루는 작업들의 주요 방법론인 '형상 흐리기, 문화적 맥락 진지하게 다루지 않기, 시적 발화, 표층에 머무르기' 등 역시 저는 여성적 전략이라고 알고 있거든요. 그 반대 격인 '단일하고 웅장한 서사 만들기, 의미와 메세지 들이밀기, 문화적 맥락 강조하기' 등은 선형적 역사를 만들어온 남성들의 방식이니까요.

요약해 보면 전자는 후자를 '하지 않겠다'는 측면에서 저항적...... 인 거죠. 하여튼 그런 작업들을 그러모아 빚은 시공간을 승아님은 '윤슬, 어린 열매, 초여름의 감각'으로 소개했고 'Summerspace', 여름공간이라 이름 지었습니다. 그랬을 때 저에게 즉각적으로 떠오르는 건 여름에 원피스 입고 걸어 다니는 여자들, 박솔뫼 작가의 소설 그리고



Nan Goldin, <Picnic on the Esplanade, Boston>, 1973, ©Nan Goldin


이 사진이었네요. 승아님의 글 「여성주의는 미술에서 어떻게 공공성을 획득할 수 있었나?」를 읽고 든 궁금증이었습니다.




*김리윤, 「얼마나 많은 아이가 먼지 속에서 비를 찾고 있는지」, 『투명도 혼합 공간』



재훈 드림

《Summerspace》는 여성성에 관한 전시가 아니에요. 그러나,

유승아

2024.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