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괄량이와 친구가 되는 법 2: 무엇으로 태어났는지보다 어떻게 사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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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손

목요일 밤 메일에 이어쓰는 금요일 새벽의 메일입니다. 보내주신 메일 잘 읽었어요. 아이웨이웨이 개인전에서 비디오를 좁은 방에 유배시켜 설치해놓은 것도, 공간을 채우려 벽지 작업을 대규모로 설치해놓은 것도 저 역시 아쉬웠습니다.

"공간 채웠네?" 란 생각을 보면서 계속했었어요. (물론 그것은 엄청난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그래보고 싶어요.) 저는 전시장 바깥에 있던 자료들과 전시장 딱 들어갔을 때의 첫 공간이 제일 좋았어요. 그거 보고 웨이웨이 아저씨가 어떤 사람인지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번 메일에서는 <말괄량이 길들이기>에 관한 이야기를 마무리지었으면 하네요.

이 전시가 갖고있는 질문 중 하나는
'여성'이란 무엇인가. 오늘 이곳에서 '여성'이란 어떤 형태와 방식으로 이해되고 있는가. ‘인 듯해요.’ 그리고 위 질문과 느슨하고도 긴밀하게 연결되어있는 출품작들은 하나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여성 신체 재현'이라는 포인트에요.


2. 유아연

지난 메일에서 이야기했던 페인팅이 소스로 삼았던 대상 역시 여성 연예인의 신체였고, 위에서 보여드린 세 장의 사진 모두 여성의 신체를 베이스로 두고 있습니다. 이 지점에서 '여성'이란 개념을 생물학적 성별로만 축소하여 작업하는 것이 아니냐는 쉬운 비판이 떠오르는데요.
작업들을 보면서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여성 신체를 가장 부각시키는 유아연의 작업입니다.

말랐지만 가슴은 크고 화려한 옷을 입은 여성 신체. 전형적으로 성적 대상화된 여성의 이미지죠. 그 사진 이미지 위에는 의상과 악세사리 정보가 쓰여져 있습니다. 패션 매거진의 문법이네요.
패션 아이템을 팔기 위해 여성 신체를 성적 대상화하는 방식으로 동원하나 봅니다. 작가는 그 이미지의 조건들을 모두 충족시키는 듯싶지만 한가지 트릭을 사용합니다. 바로 실리콘 소재 바디 수트를 착용한다는 것인데요.

작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눈 부위나 수트가 끝나는 부위에서 작가가 바디 수트를 사용했다는 사실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크레딧에도 Model: AVATAR by AHYEON RYU 라고 적혀있네요. 이를 가장 쉽게 읽어볼 수 있는 방법에는 역시 신디셔먼식 독해가 있겠습니다.

"여성성/여성적인 이미지란 모방함으로써 누구든 탈부착이 가능한 허구적 구성물이다!"

근데 이건 너무 쉽죠. 혹시 다른 트릭이 숨겨져있을까 아이템 소스들을 검색해보았는데 그건 사실대로 적어두었더라구요. 그래서 스테이트먼트를 보았는데요. 전작의 맥락을 잇고 있다는 정보 외에 추가적인 힌트는 없었습니다. 그런 근거로 유아연 작가의 이번 작업은 위 개념을 경유하지만 그 개념을 초과하는 이미지는 아니었다고 생각해요.


3. 황예지

다음은 황예지의 사진 작업입니다.

이 액자를 처음 봤을 때 "오........." 하고 어떤 좋음을 느꼈습니다. 왜인지는 모르겠는데 사진(액자)의 언어를 미술 전시에서의 다른 작품들처럼 즉물적으로 와닿게 활용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나하가 페인팅에서 취했던 비가시화의 전략에서 나온 미감을 황예지의 사진 작업에서도 발견할 수 있어, 이나하 다음으로 황예지의 사진을 보게 하는 배치가 적절하다고 느꼈습니다.

스테이트먼트를 보면 "작가는 흐릿함, 여백, 노출 부족 등의 사진적 빈틈을 통해 존재가 부드럽게 자리할 수 있는 공간과 여지를 마련한다'고 적혀있는데요. 알고보니 사진 속의 인물이 MTF 트랜스젠더라고 하더군요.

그 사실을 듣고 나니 저 포토 프린팅된 천의 위치가 모호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안에 그런 마음이 있는 것 같아요. 퀴어와 퀴어한 것들은 지금보다 더 가시화되어야 한다. 장애인 이동권 더 시끄럽게 주장되어야 한다. 사회적으로 약자일수록 시끄럽게 굴어야한다.

근데.. 제가 피사체되신 분도 아니고 그 분을 촬영한 사람도 아니라서 너무 주제넘는 의견이었네요. 여튼 더 뻔뻔하게 dp되거나 다른 작업들 사이에 있었어도 좋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바로 뒤에 유아연의 삐까번쩍한 라이트패널 사진 작업이 있어서 이 천 작업이 시각적으로 소외됐던 게 좀 속상해서요.
누군가와 깊은 인터뷰를 한 뒤에 사진을 만든다는 제작방식이 흥미로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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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도은의 작업에 대해서는 꼭 이야기해야할 듯 싶은데 제가 이제 체력을 다 썼네요. 다음 메일에서 이야기를 마쳐야할 듯합니다.

그러게요. 누가 저를 괴롭혔을까요.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

이렇게 말하는 것도 너무 쉽네요. 전 애인과 헤어지기 전에 마지막으로 했던 약속이 '여성의 관점으로 바라보기' 였어서 이번 전시에 유독 마음이 쓰입니다. (이 전시는 왜 후원을 안 받고 진행된 걸까요?)

내일 또 메일 드릴게요!

감사합니다. :)
재훈 드림

말괄량이와 친구가 되는 법 3: 말괄량이가 되는 법

재훈

2022.04.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