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괄량이와 친구가 되는 법 2: 무엇으로 태어났는지보다 어떻게 사느냐

<

안녕하세요, 손.

오늘 진행하신 프린트 세미나 잘 들었습니다.
줌과 카톡, 메일에서만 보던 손이 청중 앞에서 말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는 그런 생각을 했어요.

"아, 말(강연)을 참 잘한다."

덕분에 김성환이 진행했던 활동 중 사람들을 불러모아서 각자 짧은 강연을 만드는 것이 떠올랐습니다. 마구 내뱉기나 페차쿠차처럼요.

저번에 저희가 줌에서 카메라 키고 할 일 한 것처럼 작업을 이렇게 하면 될 것 같다는 말씀을 드린 것 같은데요. 저는 언젠가 일주일 간 작업 캠프 같은 것을 해보고싶은 마음이 있어요. 바로 일주일 간 작업 생각과 작업과 작업 이야기만 하기.
너무 생산적이고 재미있을 것 같지 않나요,, (설렘)

이번 메일은 <말괄량이 길들이기>의 마지막 편으로 장도은의 작업에 관해 쓰고자합니다.


4. 장도은

(1) 여성 신체
저번 메일에서 짚었다시피 장도은의 조각 역시 여성의 신체를 베이스로 만들어진 듯합니다. 허리의 굴곡, 표정의 뉘앙스, 입술의 모양 등을 단서 삼아 그렇게 추측할 수가 있는데요. 그 중에서도 저는 특히 아래 두 조각이 좋았습니다.

음.. 제가 조각사를 잘 모르지만 1900 ~ 2000년대 한국에서 활동했던 유명한 조각가(, 페인터, 사진가, 퍼포먼스 아티스트, 영화 감독)들을 보면 거의 남자일 것이거든요? 근데 사람이 어떤 걸 만든다는 게 자신의 몸이나 몸의 감각으로부터 출발할 때가 다반사잖아요. 그런 맥락에서 그 당시 만들어진 얼굴 조각들을 보면 대다수가 남자 얼굴이란 말이죠. 근데 장도은의 조각들은 여성의 얼굴이다라고 직접적으로 느껴지는 게 있는 동시에 저것도 여성의 얼굴인가 싶은 얼굴도 최소한 남성의 얼굴처럼 안 느껴진 점이 좋았어요.

남성의 얼굴이 득실한 얼굴조각 월드에 여성/비남성의 얼굴이 계속해서 추가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제 눈에 뛰었던 다른 요소는 조각들을 받치고 있던 좌대에요.

(2) 좌대

네. 전통적인 좌대하면 흔히 연상되는 단단한 직육면체와는 다르죠. 택배 상자를 가져다 만든 것 같기도 하고, 좌대에서 나무 원목이 고개를 내밀기도 합니다. 이게 뜻하는 바가 과연 무엇이냐!

조각 언어를 잘 모르는 저로서는 잘 모르겠는데요. ^^
그냥 LG 모니터에서 영상 틀고, 호미화방에서 구매한 캔버스에 그림 그리고, 사진 찍어서 액자에 프린트 넣는 것보다 형식적으로 한 발자국 더 나아갔다는 인상은 받았습니다. 그 전통적인 하얀색 좌대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점에서요. 뭔가 재활용이나 생분해도 가능할 것 같이 생기긴했네요.


5. 리뷰를 마치며

다른 작가들의 작업도 더 살폈으면 좋았을텐데 아쉬움이 조금 남긴해요. <말괄량이 길들이기>는 제가 총 3편의 메일을 할애한 최초의 전시인데요. 그 이유는 이 전시나 개별 작업이 기가 막히게 뛰어나서라기보다는 이 전시가 고민하고 질문하는 바가 제 고민과 질문이랑 관련이 깊어서 그런 것 같아요. 이 전시를 통해서 제가 정말 고민을 한 것인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다른 전시에 비해 이 전시와 시간을 더 보낸 것은 맞죠. 보다 더 긴 전시 경험이었네요.

이 전시는 도록은 안 나올 것 같은데 아티스트 토크 같은 것도 없었네요. 구글, 트위터, 인스타그램에 #말괄량이길들이기 검색을 했는데도 나오는 리뷰 글이 없고요. 메일 다 써놓고 갑자기 힘이 빠지는데, 슬프네요.

미술의 속도는 원래 느린 것이니 기다려야 하는 걸까요.
답답하네요.

전시를 준비하면서 기획자와 참여 작가들은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을까요.
궁금하네요.

제가 작년에 '여성적 공격성의 형상들'이란 수업에서 마조히즘에 대해서 배웠거든요? 거기서 제가 수업 끝나고 이해가 잘 안 돼서 강사님에게 질문을 했어요. 마조히즘을 배워야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그것이 여성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강사님이 대답했어요.

그것(마조히즘)이 여성들에게는 사회적으로 주어진 삶의 조건 중 하나라고. 다이어트 생각하면 된다고.

그때 '아...' 하면서 커다란 걸 느꼈는데요. 자신의 몸이 마음에 들지 않고 싫어서, 그 몸과 화해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여성들이 많더라고요. 비단 그 수업에서뿐만이 아니라 이곳저곳에서 많이 들었어요. 관련하여 전시에서 한솔 작가가 만든 영상(페이크 다큐멘터리) 중에서 레즈비언 부치가 집에서 나올 때 가슴에 압박 붕대를 하던 장면이 떠오릅니다. 유아연 작가가 입었던 잡티 없는 피부와 커다란 가슴의 실리콘 수트도 떠오르고요.

제가 저번 메일에서 이 전시 자체가 '여성'이란 범주를 여성 신체로 국한시키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을 받기 쉽다는 이야기를 했던 것 같은데요. 제가 퀴어 관련한 작업 했을 때 교수가 그런 말 했거든요. “그런 거 이미 옛날에 다 있었다. 나도 했고 다 했다.” -> 이 말은 대충 그런 거 지금 다시 하지 말란 말이겠죠?

제가 원래 할 말이 좀 늦게 떠오르는 편이라 그 당시에는 바로 답변을 못했는데요. 저는 그렇게 대답하고 싶었어요.

"그럼 그 문제 때문에 내가 아플 일은 없었어야지. 니네가 그렇게 존나게 작업해서 정말 인식을 바꾸고 문제를 해결하고 시대를 바꿨다면 내가 그 문제 때문에 지금 여기서 다시 또 상처받을 일은 없어야 되는 거 아닐까? 아픈 내 몸뚱이가 네 눈 앞에 있는데 너는 문제가 없다고 말하는구나."

네, 지금도 저 답변은 제 마음에 계속 품고 다니거든요. 그래서 저는 이 전시가 품고 있는 질문이 새롭지 않더라도 비판하지는 못 할 것 같아요. 이 전시가 대외적으로 생산적인 비평을 발생시키지 못했더라도 제게는 중요했습니다.

마음이 좋지 않네요. 쓰다보니 많이 길어졌는데, 이 전시를 앞에 두고 이야기를 하고싶었습니다.

그럼.. 이따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재훈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