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염 드로잉>과 <오래된 방은 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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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초롱: 아쉬웠던 점도 이야기할게요. 처음에 제가 전시회 어디서 하시냐고 물어봤을 때, 장소가 오피스텔이라고 해서 답변을 듣고 상상한 바가 있거든요? 근데 전시장에 들어가니까 헷갈리더라고요. 좀 부자연스럽다고 해야 되나? 이게 굉장히 애매한 지점인데 전시장처럼 보였어요. 내가 집 구석구석을 다 열어보지 않았다고 가정해도, 정리가 많이 되어 있더라고요.

예컨대 침대 안의 T5 조명이나, 샤워 부스 문에 꼭 맞춰서 프린트한 <수염 드로잉(외딴 여자)> 사진. 그리고 책장 옆면을 봤을 때 『The Park』라는 책의 표지 사진이 언뜻 보인다든가 하는 선택이 뭐랄까,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게 아니라 연출처럼 보였달까? 전시 공간으로서의 오피스텔을 생활 공간으로 보여줄지 무대로 보여줄지를 작가가 조금 헷갈렸나 싶었어요.

제가 제일 좋아했던 작업이 그 꽃 작업이었거든요. 수염으로 만든 꽃. 그게 제일 자연스러워서 좋았어요. 보면서 ‘이게 제동 초등학교 2학년 재훈 씨의 본질이 아닐까? 정말로 찾고 싶은 자기 자신 되기가 이런 건가?’ 생각하기도 했고요. 저의 마음에 있는 어떤 걸 좀 울리게 만들었어요.


사진: 안초롱


재훈: 그거 발견한 사람도 많이 없는데, 용케 보셨네요.

안초롱: 근데 그거는 뭐, 취향이니까.

재훈: 그렇죠. (웃음)

안초롱: 수염 드로잉의 원래 사이즈가 어느 정도인지 물어본 이유도 그런 거였어요.

재훈: 초롱 씨 취향이요.


<수염 드로잉(외딴 여자/수염바닥)>, 피그먼트 프린트, 2024


안초롱: 네. 근데 ‘외딴 여자’가 왼손에 들고 있는 고추는 왜 그렇게 얇고 길었어요? 요술봉처럼 생기기도 했는데, 채찍처럼 보이기도 하더라고요. 저는 <수염 드로잉> 속 그 여자가 누군가에게 맞아서 웃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다른 사람을 때리려고 기다리는 모습처럼도 보였지만요. 욕실 안에 있는 S 성향의 ‘외딴 여자’가 욕실 밖에 있는 (<대기 시간>과 <무제> 속) 마조히스트들을 때리는 거지. 전시를 보며 혼자 그런 상상을 했었어요. (웃음)

순수한 재훈: ...... 재, 재미있는 상상이네요.

안초롱: 이런 얘기 어제1도 했죠? 안 했어요?

재훈: 마조히즘에 관한 이야기가 전반적으로 나오긴 했는데요. 말씀하신 것처럼 <수염 드로잉> 속 ‘외딴 여자’가 <대기 시간> 속에 있는 인간을 박았다 막 그런 이야기는...... 처음 듣긴 해요. 근데 그렇게 해석해도 할 말이 없긴 하죠. 어쨌든 제가 작품을 통해 구현하려 하는 섹슈얼리티는 자족적인 구조를 지향하고 있으니까.

안초롱: <대기 시간>이 에고고 ‘외딴 여자’가 얼터 에고인 거야. 그래서 얘가 얘를 데리고 가서 흐흐흐... 미안합니다. 어쨌든 <수염 드로잉>도 자기 신체 일부로 만든 거잖아요.

재훈: 그렇죠.

안초롱: 하여튼 혼자서 그런 상상을 했다. (웃음)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얘기하다 보니까 제 뒷면도 다 까이네요.

재훈: 아니에요. 그럴 수 있죠. 소극적으로 말하고 있지만 저도 그런 상상 많이 해요.


<끝없이 걷는 날>, 몰딩 위에 사진, 2024


안초롱: 그런 건 의도한 것 같았어요. <끝없이 걷는 날>을 바닥 몰딩에 배치해 놓은 설치 방식. 관객에게 ‘너네도 엎드려서 봐라’라는 메시지처럼 읽혔는데, 그런 건 의도대로 잘 전달이 된 것 같아.

그리고 또 궁금했던 부분, ‘오래된 방은 궁전’이 전시 제목이고 동명의 사진 작업이기도 하잖아요. 근데 이 사진이 - <수염 드로잉>을 제외하면 - 유일한 정면 이미지란 말이지. 그래서 왜 정면 이미지를 메인으로 했을까? 물어보고 싶었습니다.

재훈: <끝없이 걷는 날>이나 <여름의 뒷면>에 쓰인 사진에는 인물의 의상보다 포즈가 중요해요. 전자에서는 네 발로 걷는 행위와 그 방향, 후자에서는 폭력을 당했거나 예견한 모습. 스타킹이나 란제리, 가발 등은 그런 능동/수동적인 모습이 출현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 조건으로 역할 해왔고요.

<오래된 방은 궁전>에서는 반대로 아무 포즈도 안 하고 가만히 있는 인물이 보이는데요. 상대적으로 덜 자극적이고 덜 익명적인 이 사진을 처음 확인했을 때 이 사진 속 인물의 섹슈얼리티가 프로젝트의 초기 목표 중 하나였던 ‘나에게 필요한 정체성 찾기’와 상응한다고 느꼈어요. 그 모습이 이 전시에 있으며 관객을 맞이하면 좋겠었습니다.



<오래된 방은 궁전>, 피그먼트 프린트, 2024


안초롱: 제목 잘 지은 것 같아요. ‘궁전’이란 단어는 - 성적 판타지처럼 - 판타지적인 뉘앙스로 다가오고, ‘방’은 사적인 공간, ‘오래된’은 “취미가 오래됐나?”라는 식으로 느껴졌거든요. 각자의 경험치에 따라서 상상할 수 있는 여지가 있어서 괜찮았어요.

재훈: 다행이네요.








  1. 유승아·재훈·한솔·황예지, 「《오래된 방은 궁전》 리뷰」, 『오래된 방은 궁전』, Tank Press, 2025년 출간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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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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