앎에 성공하는 것과 별개로 알고자 하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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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 안녕.
반말로 리뷰 메일 처음 써봐서 어색하다.
《가브리엘》 리뷰를 누구에게 보내야 하나 고민하다가 저번에 네가 남화연 작가 리서치해온 거 보고 너에게 보내면 되겠다고 생각했어.
주변 미술친구 중에서 조금이나마 적극적인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 보내면 좋을 듯해서.
음... 남화연 작가에 대해서는 무슨 말을 먼저 해야할지 쉽게 안 떠오르는데 그 이유는 내가 잘 모르기 때문인 것 같아.
여기서 '모른다'란 그에 대해 남아있는 기록들이 적다는 불평은 아니고, 내가 그의 작업을 직접 본 경험이 많지 않다는 게 가장 크게 다가오는 듯.
2020년 아트선재센터에서의 개인전 《마음의 흐름》, 2022년 인천아트플랫폼 《송출된 과거, 유산의 극장》에서 봤던 <반도의 무희>와 부산비엔날레에서 봤던 <당신은 오직 두 번 산다>, 그리고 이번 《가브리엘》이 다야.
생각보다 많이 봤네. 그런데도 잘 모르겠다는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
남화연! 하면 바로 연상되는 작품 이미지가 따로 없어서 그런 걸까?
아니야. 방금 쓰고나서 다시 생각해봤는데 그러기엔 <당신은 오직 두 번 산다>에서 퍼포머 세 명이 안고 있던 이미지가 많이 좋았어.
두 명이 서로를 안는 이미지는 종종 봤어도 세 명이 같이 안는 장면은 생경해서 인상적이었거든. 당신은 오직 두 번 산다는 제목처럼.
사실 내가 작업을 직접 보지 못한 작가가 수두룩하고, 미스터리한 면모가 있는 다른 작가도 많지만, 이렇게까지 '잘 모르겠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아마도 더 알고 싶은 마음이 커서 그렇다고 생각해.
그 이유 중 하나는 남화연의 주 매체가 퍼포먼스, 움직임이고 관심사가 시간 그리고 비선형non-linear이라 그런 듯.
퍼포먼스랑 비선형성은 내가 간절하게 알고 싶은 theme 중 하나거든.
간절하게 알고 싶은 마음이 왜 생겼는지에 대해서는 전시 이야기를 하다보면 나올 수도 혹은 안 나올 수도 있을 거라 확신해.
어둡다.
전시 공간이 되게 어둡더라. 작년 바라캇 컨템포러리에서 열렸던 김성환 개인전만큼은 아니었지만 공간의 밝기가 굉장히 낮은 편이라고 생각했어. 어둠을 보여주고 싶었던 걸까?
전시장은 크게 보면 두 군데로 나뉘어 있는데, 위 네 장의 사진에서 보이는 공간이 들어가면 보이는 첫번째 구역.
그리고 둥글게 달려 있는 커튼을 젖히면 들어갈 수 있는
두번째 구역.
두 구역 모두에서 정체 모를 바람 소리가 들렸는데 그게 앞서 언급한 어두움과 함께 공간의 인상을 크게 이루고 있더라.
여기서의 바람 소리는 조그마한 공간에서 고정된 면들에 부딪혀 나는 바람이라기보단 굉장히 커다란 공간에서 부는 바람이라고 느꼈어.
삭막하다는 느낌에 가까웠지.
두번째 구역에 있는 영상 작업 <가브리엘>에 6채널 스피커가 포함된 것으로 보아 가브리엘에서 나는 소리였나 봐.
음... 계속 쓰다 보니 왠지 이 글이 평소에 써왔던 다른 전시 리뷰보다 뜬구름을 잡고 있다고 느껴지는데, 그 이유는 본 전시가 특정한 사회문화적 의제를 끌어오지 않고, 작품에서 시각적으로 볼 수 있는 정보보다 공간의 어두움, 바람 소리의 광활함, 사운드 조각이 불시로 내는 소리에서 복합적으로 느껴지는 분위기가 더 크게 부각된 전시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다른 전시 같은 경우 나의 감상 경험을 사진과 글이라는 매체로 어느 정도 잡을 수 있었다고 생각하는데 《가브리엘》은 그게 좀 덜 되네.
모든 작품이 비슷한 감각으로 맞닿아있다고는 생각하니 그나마 볼 수 있는 이미지가 뚜렷했던 영상 <가브리엘>에 대해서 먼저 말해볼게.
막상 이렇게 놨지만 딱히 말할 거리가 분명히 있는 영상 작업이라서 말을 꺼낸 건 아니야.
할리우드 상업 영화처럼 명확히 이해할 수 있는 장면Scene과 장면 사이에 이야기Story스러운 인과관계가 따로 없었거든.
이 점을 '미술의 맥락에서 만들어지는 영상 작업의 특징'이라는 분류로 뭉뚱그릴 수도 있겠지만.... 이번에는 그러고 싶지 않고 더 구체적으로 말해보고 싶어.
비선형. 비선형적 내러티브. 내러티브. 서사. 이야기. 아이언 맨Iron Man. 스파이더 맨Spider Man. 헐크Hulk. 캡틴 아메리카Captain America. 어벤져스Avengers. 할리우드 상업 영화, 상업적 리얼리즘. 관습적인 인과 관계, 선형적인 이야기. 선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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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에서 이야기를 빼면 뭐가 남을까?
나는 그동안 미술을 공부하면서 미술은 이야기를 다루지 않는다. 그것은 소설이나 영화가 (더 잘) 다루는 문제다. 라는 말을 간간이 들어왔거든. 나는 미술에 대해 아는 게 너무 적고, 마블Marvel 영화처럼 기승전결 짜임새를 기본으로 하는 컨텐츠만 많이 봐왔던 때 이 말을 처음 들었는데 그때는 저게 뭔 소린가 싶었거든. 그런데 지금은 이 <가브리엘>을 통해 그 질문에 덤벼볼 수 있을 것 같아.
앞서 내가 《가브리엘》을 채우고 있는 건 바람 소리라고 했지.
<가브리엘>에는 내레이션Narration이 거의 없어.
내가 스틸 컷만 잘라 와서 이미지만 달랑 있는 게 아니라, 정말 저런 단일 이미지들이 띡하고 정지해있거나 어느 장면은 조금씩 움직이거나 하는 정도의 변화만 있거든. 거의 슬라이드 쇼라고 말해도 될 정도로.
위 장면들을 보면 영상의 분위기는 대략 짐작할 수 있지만 구체적인 이야기나 메시지는 찾아볼 수 없잖아. 스틸컷으로만 봐서 그런 게 아니라 실제 영상을 봐도 얼추 비슷한 정도의 인상만 받게 돼.
어느 장면은 주차장 같기는 한데 잘 모르겠고, 저 장면에서는 다섯 명의 아이가 작은 숲속에 서 있는데 왜 서 있는지 잘 모르겠고, 또 저 장면은 회화 작품을 클로즈업한 것 같은데 왜 그림 전체를 안 보여주고 클로즈업만 하는 것인지 모르겠고.
이렇게 장면들의 이유나 인과관계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지 않고 한 장면 본 다음 그다음 장면, 한 장면 또 계속 본 다음 그다음 장면 식의 편집이었어.
20분짜리 영상을 뚫어져라 쳐다봐서야 내가 느낄 수 있었던 건, 영상에서 보여졌던 이미지들이 여느 미술 영상에서처럼 내레이션에 휩쓸려가지 않았다는 점?
영상 중간에 등장했던 두려워하지 말아라 마리아 같은 자막이나 우주 탐사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 우리의 상식과 전혀 다른 종류의 생명을 어떻게 발견할 수 있을까요? 와 같은 내레이션처럼 그 텍스트가 가진 혼란-희망의 힘이 분명하게 전달됐음 - 텍스트가 작용했음 - 에도 불구하고
이미지가 텍스트의 보조 수단이나 자료 화면, 혹은 어떤 서사의 받침대로서 활용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이미지 자체로 잘 서 있었다는 점.
아까 영상에서 이야기를 빼면 뭐가 남을까란 질문을 했었지. 나는 이미지Image가 그중 분명한 하나라고 생각하거든.
그런 점에서 <가브리엘>은 절제된 편집과 텍스트 사용을 통해 보는 사람에게 영상의 이미지를 하나 하나 깊숙이 넣어준다고 느꼈어.
예감, 직감이라는 것은 언어 이전에 발생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 에 이 예감과 직감이 자연스레 떠오르는데 방해되는 편집과 텍스트를 의도적으로 절제한 듯하네. 이것은 영상 작업의 제목이자 본 전시의 이름인 '가브리엘'에 대한 작가의 생각과도 연결돼.
위 두 답변을 처음 읽었을 때 나는 묘한 자유를 느꼈어. 작가가 이전에 무용가 최승희에 대해 진행했던 작업을 보면서도 비슷한 감정을 받았던 기억이 문득 든다. 아마도 이게 내가 남화연 작가에 주목하는 이유 중 하나 같아. 그가 '가브리엘'이라고 분류한 이미지를 하나하나 살펴보면,
나는 <가브리엘>을 보면서 물리적으로 동시 접속하기 불가능한 위 시공간 - 다른 시대에 만들어진 이미지나 같은 시간 축에 있다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멀리 있는 공간 - 을 영상 편집을 통해 계속해서 오간다는 인상을 받았거든?
나는 이게 남화연이 작가 본인에게 주어진 시제로부터 한 발자국 떨어져서, 가능한 시제의 범주를 최대한 넓혀놓고 말하기를 하는 것처럼, 자신이 원하는 시간대로 임의 접속하는 것 같다고 느꼈어.
그래 접속. 접속이 적절한 단어다.
영상 <가브리엘>에 등장하는 자막 중 이것은 모두 오래된 이야기다. 라는 구절이 있거든?
나는 작가가 영상에 이 문장을 type writting한 게 '현재를 아주 먼 과거처럼 바라보는 시선' 을 포함한 행동이라고 생각해. 이 반복적인 행동. 시간에 대해 남화연이 가지고 있는 이 태도가
라고 남화연이 고백했던 비밀과 연결된다고 느꼈어. 이게 바로 내가 말했던 묘한 자유의 정체 아닐까 해. 그동안 남화연은 실시간Real Time과 연속선/불연속선 상에 있는 다른 시간대/시대를 작업의 재료로써 적극적으로 같이 다뤄왔다고 느꼈거든. <가브리엘> 뒤에 있는 작품 <새로운 사원>도 비슷한 접근의 조각 작품이야.
과거 마야 문명의 어느 도시를 스캔한 3D 데이터를 조각이라는 아주 다른 사실의 차원으로 밀어내 고정시킨 선택에서, 그가 시간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느껴지지 않니?
자신에게 주어진 시대가 아닌 시대에 대한 반복적인 붙잡기 운동, 뛰어난 동기화 능력, 습관적인 히치하이킹? 막 이런 표현들이 떠오르네.
이처럼 자신의 관심사에 예민하게 주의를 쏟으면서 만들기를 계속하는, 현재 바라보고 싶은 것을 계속해서 바라보는 그 삶도 좀 궁금한 것 같아.
어떤 기분일까? 사람들이 지금 시대로부터 느끼는 압박이나 쫓김으로부터 조금은 더 자유로울까? 스트레스를 약간은 덜 받고 사시려나...?
전시를 보면서 이런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어.
어쩌다 보니 커튼 안 구역 이야기만 열심히 했는데 커튼 밖에 있는 작품들에 대해서는.... 그의 다음 전시 때 말해볼 수 있기를 바라며 메일을 줄인다.
아, 그리고 상하 너 이번에 제주도 간다고 했지. 요즘 방학이라 그런지 주변 사람들 보면 나 빼고 다 여행 가는 것 같아. 그런 거 계속 보다 보면 나도 제주도 가고 싶더라.
정말로 가고싶은 걸까?
재훈 드림
안녕 재훈아!
김상하
2023.0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