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경비원, 나팔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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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재훈님.
아트센터 예술의 시간에서 예술교육을 기획하고 있는 유상아입니다.
이번 인터뷰룰 통해 전시와 교육에 대한 생각을 나눌 수 있게 되어 반갑습니다.
저에게도 정우찬 작가의 전시 《경비원,나팔수,도깨비》는 여러모로 의미있는 시간이었어요. 그런 경험을 함께 이야기할 수 있어 기쁘게 생각합니다.

말씀하신 '정성들여 만들어진 이야기가 그것을 필요로 하는 관객에게 닿는 일'이 사실 제가 해야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이번 정우찬 작가의 전시는 매년 진행되는 예술교육 페스티벌 기간에 함께하게 된 전시였습니다. 사실 처음에 레고랜드의 사회적 이슈를 다루는 전시라는 내용만 전달 받았을 때는 '이 전시가 남녀노소 모두에게 감상하기 적당할까?' 하는 고민이 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날 때마다 전시장을 찾고 영상을 보며 머무르다 보니, 오히려 이 전시는 남녀노소 모두의 도깨비적 시선이 필요한 전시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두산초등학교와의 협업은 말씀하신대로 저희에게도 도전이었던 프로그램이었는데요, 교육 마지막에 정우찬 작가의 전시 관람을 포함한 이유는, 아이들의 시선으로 본 전시에 대한 감상이 궁금해서 였습니다. 상설 프로그램에 아이들의 감상 기록을 남기면 좋겠다는 바람도 있었지만, 시간상 생략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초등학생들은 생각보다 훨씬 집중하며 작품을 감상했고, 영상 매체의 특성 덕분에 더 친근하게 작품에 다가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전시장 초입에 설치되었던 상설프로그램 <나는 당신과 함께 이곳에서 이야기하길 요청한다>는 전시를 감상한 관람객들의 또 다른 도깨비적 시선을 듣기 위해 마련된 장치였습니다.
말씀하신대로 '상당히 부담스러운 문구'에 다소 어려울 수도 있지만, 관람객들은 자연스럽게 작가가 바랐던 것처럼 전시장을 '대화의 통로'로 삼았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롤링페이퍼가 아래로 내려가는 방식이 아니라 위로 올라가는 방향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각자의 생각을 적더라도 이전 사람의 글이 위로 올라가면서, 자연스럽게 대화의 흐름을 형성하게 되죠. 참여자들이 이 방식을 의식하지 못하더라도, 앞선 사람의 글 아래에 자신의 생각을 이어 적으며 무의식적으로 대화에 참여하게 된다는 점이, 저는 정우찬 작가의 작업과도 닮아있다고 느꼈습니다.

보통 전시를 준비할 때 작가와 만날 기회가 생기면 대화를 나누곤 하는데, 정우찬 작가는 특히 관람객의 반응과 감상에 관심이 많은 작가였습니다.
한 번은 상설프로그램 롤링페이퍼에 다소 거친 표현이 크게 적혀있었는데, 그걸 보여드리며 어떻게 할지 상의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작가는 그것을 보자마자 "재밌다"며 두 손으로 입을 막으며 웃어보였습니다. 정우찬 작가의 그 태도는 저에게도 인상적이었는데요, 감상자의 생각을 듣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막상 불쾌할 수 있는 표현에 유연하게 반응하는 그의 태도는 감상자의 해석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자세 그 자체였거든요. 롤랑 바르트가 말한 '저자의 죽음' 이 작가의 전시장 안에서 실제로 구현되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저는 예술공간에서의 교육은 대중이 작품을 잘 감상 할 수 있도록 돕는 안내자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이걸 한번 이렇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하고 제안해주는 것이죠. 재훈님이 보내주신 긴 메일을 읽으며 전시에 대한 호기심과 감상을 느낄 수 있었고, 저에게도 자극이 되었습니다. (전시 기획이나 작품에 대한 세부 이야기는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질문하신 관객에 대한 생각에 대해 답을 드리며 저의 모든 답변을 마치겠습니다. 저는 모든 전시의 교육을 기획할 때, 온전히 작가와 작품으로부터 영감을 받으려 노력 합니다. 전형적인 형식을 피하기 위한 저만의 방식이기도 합니다. 저 역시 회화를 전공했기에, 작가들이 어떤 마음으로 작품을 대하는지, 이 전시가 그들에게 얼마나 소중한 순간일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작가의 바람이 관람객에게 닿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교육을 기획합니다.

또한 대상 설정에 있어서는 작가의 작품을 보며 어떤 관객이 이 교육에 참여하면 가장 효과적일지 연구합니다. 교육 주제를 먼저 설정하고 전체적인 컨셉을 기획하고 나면 일반 관람객을 대상으로 할지, 혹은 사회공헌 목적으로 진행할지를 결정합니다. 그 후 대상에 맞춰 교육 내용을 다듬는 데에 많은 시간을 들입니다. 홍보는 지금도 여전히 쉽지 않지만, 재훈님과 같이 좋은 전시와 교육을 보고 글을 남겨주시는 분들이 많아진다면, 홍보에 가장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아트센터 예술의 시간은 "모든 전시에서 관람자가 작가와 기획자가 건네는 이야기 안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돕고자 하며, 다양한 세대와 문화예술 경험을 함께 하고자 기획"하는 공간 입니다. 금천구 독산이라는 지역이 문화예술적으로 다소 소외된 곳인 만큼, 이곳에서 예술교육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일에는 직업적 책임감도 사뭇 필요한 일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좋은 작가와 작품이 있을 때 비로소 좋은 교육도 기획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앞으로도 우리 공간에서 그런 전시들이 꾸준히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인터뷰를 통해 지난 전시를 돌아볼 수 있어서 저에게도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좋은 질문 덕분에 여러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어요. 감사합니다. 😄

유상아 드림





질문과 답변

유상아, 재훈

2025.1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