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진실 공작소
<
안녕하세요. 재훈님!
날씨가 추워지고 있네요. 벌써 겨울이 왔다는 느낌이에요. 재훈님 글을 읽으며 시간이 지나 저에게 덩어리로 남아있던 것이 읽으며 세밀하게 쪼개졌어요. 이 글의 화자(재훈님)이 ‘컨닝 고해’를 말하는 방식이 자신이 본 것을 자세하게 말하고 움직임을 적고 있어, 그 퍼포먼스의 일부가 되는 글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답장은 글의 부분을 인용하면서 제가 생각했던 것과 이 글을 읽고 떠오른 것을 소화하면서 써볼게요.
컨닝 고해 퍼포먼스를 보고 퍼포머가 연기한 인물의 비밀 같다고 느껴졌던 부분이 휴대폰 거치대에 걸려있던 ‘서양 우주 비행사의 얼굴’이었어요. 그래서 이 글에서 등장이 반갑게 느껴지는데, 그 아이에게 그 우주 비행사는 어떤 존재였을까, 성적인 대상이기도 한 것 같았고 그 사람이 되고 싶거나 그 사람이 있는 곳에 가고 싶기도 한 것 같았어요. 처음 마주친 인물의 내면 장소였던 것 같아요.
저는 개인적으로 인물이 고무공을 부풀리고 아양을 떠는 캥거루 콜 장이 가장 기억에 남았어요. 이 챕터에서 조금 더 드러나는 ‘당하기’의 에로틱함이 안쓰러우면서도 달콤하기도 했던 것 같아요. 재훈님이 ‘우주 비행사의 미소’를 언급하시며 말씀하시는 ‘도달하지 않음’이 이 작업과 같이 부푸는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퍼포머는 자신이 설정한 각본에 따라 연기하고 수행하는 움직임을 보이는데, 안무가이기도 연기자이기도 혹은 이야기의 본인이기도 한 몸이 흥미로웠어요. 저는 보면서 그 아이에 이입하거나 거리를 두고 보거나 하는 어쩌면 당연한 방식으로 관람했는데요. 특히 이 작업은 이동현 작가가 자신과 밀접한 위치에서 설명하는 인물의 상황을 어떻게 봐야 할까 갈팡질팡하며 보았고, 마치 그 상황이 그의 몸을 바라보는 관람자를 놀리는 듯하기도 하고, 관람자를 관음의 자리에 놓는 것 같기도 했어요. 그의 몸으로 불러온 수치심을 나의 것이었는 듯 떠올리기도 하고, 동시에 그러한 동일시를 깨고 그의 몸을 타고 가기도 하면서 계속해서 시점을 바꿔가면서 봤던 것 같아요. 그리고 사람마다 다를 것 같긴 한데, 저는 처음 퍼포먼스를 봤을 때 각 챕터의 인물이 같은 인물이라는 인지를 약하게라도 연결하지 않아서 오는 각 챕터 간의 부조화도 있었어요. 애초에 ‘각각의 몸을 가진 확실하게 다른 인물’이라기 보단 일시적으로 마련된 이곳에서 퍼포머의 몸을 매개로 나오는 상황이라고 받아들였던 것 같아요. 그 점이 이 퍼포먼스의 좋은 점으로 남아있기도 했어요.
재훈님이 글 후반에 말씀하시는 ‘컨닝’과 ‘고해’ 사이의 관계에 대해 말하는 부분에 대해 말해볼게요. 퍼포먼스를 본 당시에는 ‘컨닝’이라는 단어의 뉘앙스와 퍼포머의 행위가 이어지며 자연스럽게 큰 굴곡 없이 지나가긴 했지만, 재훈님이 명료하게 적으신 ‘컨닝’과 ‘고해’에 대한 설명을 읽으니 또 다르게 느껴지네요. 이야기할 것이 분명 생겼다는 느낌이에요. ‘서로 양립할 수 없어 보이는 이 두 단어를 붙여놓았을 때 유연해지는 곳은 자기와 자기 진실 간의 관계인데(...)’ 이 부분. 유연해진다는 표현이 참 적절한 것 같아요. 재훈님이 글에서 정리하셨듯 작가가 인물을 통해 자신의 ‘죄’를 말하는 데 사용한 모순이 있는 ‘컨닝’의 방식이 그의 몸에서 일어나는 단편적이지 않은 상황을 보여주는 데 중요한 부분이었다는데 동감했어요.
왜 어떤 감정들은 ‘평소’에 그의 몸 어딘가에서 기록되더라도 나중에야 다시 꺼내고 연기하게 될까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것을 말할 때의 막막함이 이 고해를 더욱 쩌렁쩌렁하게 보이게 했던 것 같아요. 수치심은 누군가에게 편히 말할 수 없는 부정직한 상황임과 동시에 누군가에게 훼손된 자신을 보는 감정인 것 같아요. 어떤 순간은 자신에게 뚫린 그 구멍이 무한히 훼손될 것 같은 과한 사실로써 생각하게 된다는 점에 있어서 끌어당기는 힘이 큰 상태라는 생각도 드네요. 그런 과한 사실이 칼로 도려낸 듯 날카롭게 보일 때, 자신이 물건으로써의 몸이었음을 정말 아무렇지 않게, (혹은 아무렇지 않은 척) 받아드리는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 퍼포먼스가 좋았던 점은 그러한 현실을 마련하는 방식이었어요. 감정에 젖어있기도 하고, 조절이 서툰 아이처럼 휘갈기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동시에 그 경험을 보여주는 방식이 결국 그것에 졌다는 패배감의 연속도, 이기고 그것을 쟁취해 보여주는 방식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찌하였든 이 퍼포먼스는 자신이 이기고 지는 것이 중요했다기보다는 작가가 그것을 소화하고 지켜본 한 인물(아마 작가 본인의 경험)로서의 힘쓰기, 연속하는 풍경이 가지는 힘의 불러냄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걷는 발의 리듬, 인형탈 안에서 글을 읽는 리듬, 천장 등불을 딸깍거리는 리듬. 각 챕터 마다 각기 다른 조명이 켜지며 공간이 마련되고 없어지는 그 시간들. 그것을 끌고 가거나 감당하는 이동현 작가의 신체 에너지에 숨죽여 압도당하는 시간이었어요. 지금 다시 떠올려 봐도 컨닝 고해의 분명한 쾌와 에너지가 정말 좋네요. 저는 퍼포머의 착장인 검은 물안경도 재미있었어요. 눈이 가려져서 퍼포머의 시선이 보이지 않아 더 ‘몸’이라는 대상에 집중하게 되었던 것 같은데, (글을 쓰며 관련 사진을 다시 보니 착용을 안 하실 때도 있으셨네요, 기억이 정확하지 않지만) 퍼포먼스 시간 동안 지속적으로 변하는 화자의 몸 안팎을 뒤집는 이야기들. 몇 번이고 변했던 그 시간이 귀한 유머와 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퍼포먼스를 보고 나서 한동안 홀려 있던 것 같아요.
저번 용인에서의 만남에서 조금 더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들과 함께 적어요. 글에서 그 장소에 있었던 리듬을 다시 꺼내보고 그곳에서 마주쳤던 어떤 것을 퍼즐처럼 배열하려는 시선이 담긴 글이라 좋았어요. 퍼포먼스를 보고 한동안 재훈은 이 작업을 어떻게 보았을까 궁금했는데 이렇게 이어 이야기 나누고 있네요. 더 이야기하고 싶은 부분이 있으면 시간 괜찮으실 때 답장으로 보내주세요. 제대로 정리된 내용으로 답장을 드리고 싶어 두고 보고 있었는데, 적고 보니 이렇게 오래 붙잡고 있을 일이었나 싶네요…. 그리고 ‘퀴어 미술 대담’은 아직 읽어보지 못했어요. 이 퍼포먼스에 대한 글이 있는 것은 몰랐는데, 글에서 인용하신 남웅님의 신체와 내면과 외부, 욕망과 현실의 관계가 아마 제가 느낀 좋음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고 명확하게 떠올랐다고 느꼈어요. 저도 읽어보고 또 이야기해 보면 좋을 것 같아요.
이렇게 글로써 전해주시고, 답할 수 있어 기뻐요. 건강하시고 또 연락해요!
시원 드림.
이동이툰 4컷만화
이동현
2024.1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