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보러 갈래? - 여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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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하나>는 미술 전시를 본 뒤 그 전시에 대한 감상을 나누는 프로젝트입니다. 호기심과 인내심을 가지고 바라보다 보면 누구나 쓸 수 있는 글을 나눕니다. 기존에 이루어졌던 하루에 하나 ‘메일Mail’이 전시를 본 뒤 주변 동료들과 나누는 편지였다면 새로운 컨텐츠 ‘전시 보러 갈래?’는 문화예술계 종사자Worker와 나누는 대화입니다.
팬으로서 바라봤던 누군가를 만나 대화를 나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그것은 우리가 당신을 좋아하는 이유를 밝힐 수 있는 절호의 찬스이며, 남몰래 품어왔던 질문들을 물어볼 수 있는 기회인 동시에 그 사람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은밀한 마음의 실천이기도 합니다. 당신이 좋아. 당신이 만든 것들이 좋다고. 당신이 만든 것들이 우리를 구원했어. 그것들이 좋고, 좋고, 좋고, 또 좋아. 이것들을 만든 당신의 얼굴을 보고싶어. 당신의 표정을 보고, 당신의 목소리를 들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숨겨왔던 마음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우리는 용기 내어 그 이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전시 보러 갈래?
리타라는 닉네임으로도 활동하고 있는 이연숙(이하 '리타')은 대중문화와 시각예술에 대한 글을 네이버 블로그에서부터 SeMA Coral까지 여러 지면을 통해 발표해왔습니다. 페미니즘과 퀴어 예술, 그리고 하위문화에서 발견되는 소수자 문화의 저항적 형식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여러 사람들을 매개하기도 하고요. 기획 & 출판 콜렉티브 ‘아그라파 소사이어티'의 일원으로, 퀴어 파티 콜렉티브 ‘킬타임트래시’의 구성원으로, ‘관악여성주의비평동인’의 멤버이자 프로젝트 ‘OFF’라는 이름으로, 퀴어를 위하려고 노력하는 팟캐스트 ‘퀴어 방송’의 진행자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또 만나게 했습니다.
호성은 리타를 블로그를 통해 처음 접했습니다. 호성에게 리타는 퀴어이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들을 만들어준 네크워크이며, 타협하지 않는 글을 쓸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비평가입니다.
재훈은 리타를 «캐리어즈» 아티스트 토크를 통해 처음 접했습니다. 재훈에게 리타는 '퀴어'라는 단어를 처음 알려준 팟캐스트 <퀴어 방송>의 진행자이며, 독서 모임과 친구 소개의 희열을 맛보게 해준 퀴어 선배입니다.
시원은 『정서 지도 그리기』 라는 책으로 리타의 글을 접했습니다. 잊히기 쉬운 사적인 불만을 저항적이거나 미적인 형태로 전환하는 리타의 글을 자주 찾아 읽습니다.
1 & 2, 《말괄량이 길들이기》 전시/도록 후담 그 후… & 패거리와 패거리성에 대하여
- 리타: 기본적으로 미술계라고 하는 게 있다면, 패거리처럼 작동하는 것 같지 않아요?
- 시원: 어떤 무리에 내가 끼지 못할 때 느껴지는 아쉬움과 좌절감이 분명히 있죠. 그들끼리의 어떤 은밀한 대화가 있을 것 같다는 상상을 하면 가끔 숨이 턱 막혀요.
- 호성: 이런 맥락에선 패거리와 정체성이 긴밀히 연관되어있다는 느낌이 드네요.
3 & 4. 리타님의 글에 대하여 & 정체성 / 서울 / 분노
- 재훈: 리타님이 글을 통해 소개하거나 만들고 있는 젠더 자리에 내가 속할 수 있을 거라 기대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을 거에요.
- 시원: 리타님은 개인이 그 '정체성'이란 것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 리타: 정체성의 문제는 물론 선택이지만 비용의 문제이기도 한 것 같아요. 자기 언어를 발명하기 정말 힘든 어떤 공간에서 이 사람이 퀴어라는 단어를 처음 봤을 때, 자기가 자기를 뚫고 나와야지 그 단어를 가질 수 있는 거잖아요. 왜냐하면 퀴어라는 이름은 그냥 자동적으로 주어지는 게 아니니까. 너도 퀴어 나도 퀴어 우리 모두 퀴어인 그런 동네에 살지 않으니까. 그렇다면 이제 혼자서 뚫고 나와야 될 텐데 그때 그 사람이 치러야 할 비용이 꽤 많을 수도 있죠. … 그런 점에서 서울이란 동네에 환멸을 느끼기도 해요.
5. 듀킴 개인전 《I Surrender》
- 재훈: 저는 정체성이라는 이름을 가지기 위해 필요한 비용 중 하나가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이번에 《I Surrender》에 출품된 작품들 역시 작가 본인의 경험과 연결 짓는 방식으로 감상했었고요.
- 시원: 작품들이 소환한 욕망이 전시 공간을 떠돌다 관객이 그걸 마주할 때 섹슈얼리티를 건들였던 것 같은데, 그런 의미에서 《I Surrender》의 출품작들이 관객에게 사용되기를 기다리는 마조의 모습 혹은 성적 기구 같기도 했어요.
- 호성: 저는 이번 듀킴 작가의 전시를 보면서 작가가 직업이 될 수 있겠구나를 처음 느낀 것 같아요. 우리에게 주어진 세계, 즉 언어를 전복하는 방법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잖아요. 첫번째는 언어를 정해진 문법에 맞지 않은 애매한 방식으로 구사하는 것이고, 두번째는 그 언어를 정말 능란하게 구사해서 그걸 뚫고 나오는 건데 듀킴 작가는 약간 후자가 아닌가.
6. 전시 보기 / 작가의 의도 / 모름
- 리타: 제가 아까, 작가들한테 물어봐야 작업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고 말한 이유는 작가들이 그 답을 알고 있어서도 아니고 우리가 작가들의 심정을 알아야 해서도 아니에요. 작가 본인도 모른다는 거죠. 자기가 뭘 하려고 했는지. 그래서 확인을 해야 되는 단계가 필요한 거고, 이 작가가 어떠한 맥락에서 자기도 모르는 상황을 헤쳐 나가고 있는지를 직접 들어볼 필요가 있다는 의미였어요. 작가가 저렇게 얘기했으니까 저게 맞겠지가 아닌 거죠. 답은 작가가 가지고 있는 게 아니니까.
- 호성: 작가와 관객이 알려고 소통하기보단 모름 또는 공백을 주고받는 것 같네요. 작품을 통해서 특정한 의미보단 내가 지금 뭘 하는지 모르겠다라는 본연적인 요소를 드러내고 저희는 그걸 통해서, 그러니까 그런 형태로서만 대화를 할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 작품을 만들도록 작가를 추동하는 힘으로서의 모름, 이 사람이 어떻게 몰랐길래 이렇게 만들었을까.
7 & 8. 미술계에서 구조와 창작의 관계 & 개인과 구조에 대한 이론적 대화 그리고 아마추어리즘
- 재훈: 작가가 하는 일은 아카데미에서 학습받은 현대미술의 문법을 활용하여 자신이 타고난 위치성에 기반해 작품을 만들기일 뿐이다. 라는 동시대 예술계의 절차성에 대해, 안은별 연구자와 정지돈 작가가 대화 나눴던 바가 떠올랐어요. 안은별은 이 현상을 하나의 장, 혹은 씬Scene 자체의 ‘완결화’라고 부르더라고요. 씬 안에서 생산되는 대부분의 결과물이 사람들의 평균적인 기대치를 충족시키기는 하지만 그와 동시에 우리가 한 번도 상상해보지 못했던 놀라운 경험 같은 것들은 점점 더 볼 수 없어진다고 이야기하시면서요.
- 호성: 근데 그럼 진짜 어떻게 될 것 같나요? 모두가 각자의 위치를 알고, 그래서 서로 다 기계적으로 뭘 해야 되는지 파악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모든 게 다 적당하고, 한 번도 나를 직접적으로 건드리는 경우 없이 잘 흘러가는 회로적인 사회에 살면 그게 지금의 사회보다 더 낫다고 혹은 더 이상향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 시원: 그렇게 되면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가만히 지켜보게 되는 것 같아요. 모든 질문이나 갈등을 시스템 구조의 문제라고 제쳐버린다면 어떤 시도들은 무력하게 좌절되기도 하고요. 그건 너무 쉽게 죄책감이 되고 어떻게 보면 엄청 속류적이게 되는 거죠. 당신의 많은 부분이 구조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고, 네가 이런 작업을 하는 이유는 네가 어디 지방, 어떤 계급의 부모님에게서 태어나 그 문화 속에서 살았기 때문이야. 이런 빠른 생각이요. 저는 그렇지 않음에 더 다양하고 느린 시간들이 있다고 느낄 때가 많아서, 그렇지 않음을 본인이 계속해서 감지한다면 그것을 제대로 쳐다봐야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 리타: 일단 저는 그렇게 안 보고 있어요. 미술계라는 구조가 선행하고 그 위에 작업이 올라타는 형식으로 단지 구조의 재순환, 재생산, 재유통만을 위해서 작업들이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래서 작업들이 하려고 했던 바를 읽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요. 작가의 의도라기보단, 작업이 내포하고 있는 어떠한 종류의 부정성을 읽는 일 말이에요.
9 & 10. 레즈비언 정체성 & 비평가로서의 욕망: 언어
- 시원: 리타님 글을 읽으면 아주 찰나에 느꼈다 지나친 그 감각을 언어화해서 늘어놓으시는 게 느껴져요. 그런 쥐어짜냄 같은 것들을 읽을 수 있는 형태로 만드는 건 더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차라리 없는 셈 치고 싶은 것들에 대해 말하는 일을 도대체 어떻게 계속해서 하고 계신 건지? 여쭤보고 싶었어요.
- 리타: 수명이 깎여요. 수명이 계속 깎여서 지금 얘기하고 있는 동안에도 수명이 계속 깎이고 있어. (웃음) 왜냐하면 우리가 느끼는 게, 제가 느끼는 것들이 어떤 사람들이 하루 종일 생각해도 된다고 허락한 감정이 아닌 것 같아요.
전시 보러 갈래? - 리타님과 함께 (1)
시원, 재훈, 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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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보러 갈래? - 리타님과 함께 (2)
시원, 재훈, 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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