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보러 갈래? - 여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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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하나>는 미술 전시를 본 뒤 그 전시에 대한 감상을 나누는 프로젝트입니다. 편지, 대화, 단상, 비평과 같이, 필자의 마음에 알맞은 형식의 리뷰를 비정기적으로 발행하고 있어요. 그중 ‘전시 보러 갈래?’는 좋아하는 문화예술계 종사자와 함께 전시를 보고 대화를 나누는 콘텐츠입니다.

이 글은 인터뷰와 사적 대화 그리고 전시 리뷰 사이 그 어딘가에 자리합니다. 이 유연함을 통해 전시는 사람의 몸이 드나드는 열린 공간이라는 사실이 잘 기록되었으면 해요. 서로의 감상을 나누었던 이날의 대화가 좋은 기억이 되어 오랜 시간을 살기 바랍니다.



사진: 이주요


같이 본 전시: 《Ua a‘o ‘ia ‘o ia e ia 우아 아오 이아 오 이아 에 이아》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

파티원: 이주요, 재훈, 조현진, 하지민


이주요는 예술가입니다. 그는 주로 드로잉과 설치 등의 매체를 통해,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과 시스템을 이해하고 새로운 안을 제시하는 작업을 해왔습니다.

재훈은 이주요가 2004년 라익스아카데미에서 김성환 작가를 만나 교류해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와 함께 김성환의 개인전을 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두 명의 동료를 초대했습니다.

조현진은 (여럿이) 보고 또 만들기를 즐거이 하는 사람입니다.

하지민은 (자기-임명직) 학생입니다.




1부


1. 김성환의 작업관 그리고 Room 1에 관한 단상


2. 수많은 이야기의 환상 교차로
- 이주요: 나는 그간 여타 아카이브 전시를 봐오며, 정보가 공간 안에서 어떻게 circulate 되느냐에 관해 많은 생각을 해왔어. 예를 들어, 왜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앉은 채로 읽어도 되는 자료를 전시장에서 서서 읽어야 되는가? 아카이브 전시에 놓인 수많은 자료 중 관객은 어느 정도까지 Reading 해야 하는 것인가? 작가는 관객에게 무엇을 얼마나 요청할 수 있는가. 모든 아카이브 전시가 나에게 이런 생각을 하게 해. 그런데 이 전시는 그렇지 않았어.

전시장에 핸드폰으로 찍은 듯한 구도의 사진들이 수두룩하게 있었지? 그건 전시를 보는 관객들에게 “이거 봐, 이거 한번 읽어 봐봐.” 하며 말을 거는 제스처야. 실제로 김성환은 자기가 오늘 읽은 책의 페이지 사진을 자기 지인들에게 보내거든. 이 전시의 전경을 보면서, 김성환이 나에게 이런 방식으로 정보를 공유하던 기억들이 떠올랐어. 자기가 이 이미지를 보며 떠올린 생각이나 이야기를 말해줬던 순간 그리고 나에게 의견을 물었던 순간. 그 일련의 대화가 전시장이라는 공간에 펼쳐져 있었지.

- 하지민: 김성환 작가가 이야기하는 방식을 말씀하시니 작가의 말하기 방식이 특이하다는 점이 새삼 떠올라요. 어느 인터뷰에서 김성환은 자신의 스튜디오 공간을 소개하는데요. 말하는 도중에 그 공간 안에 걸려 있는 그림을 가리키더니 이 그림이 언제 어떻게 이 방 안에 들어왔는지에 대해 말하기 시작하는 거예요.

같은 방식으로 다른 모든 사물을 시간적으로 대하며 그 이전을 상상하고, 그러한 본인의 접근에 엄청난 진지함을 갖고 임하는데요. 저는 영상 속 공간 안에 함께 있지도 않고 말해지는 상황을 겪고 있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그 시간을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흥미로워 홀린 듯이 들었어요. 이야기를 다 듣고 났을 땐 ‘그래서 무슨 얘기를 했지?’ 라며 단번에 정리되지 않지만 듣는 그 순간에는 대상을 흥미롭게 여기도록 만드는 힘이 있다고 느꼈고요.


3. 정보의 증기 사이로 트이는 자유로운 발길들
- 이주요: 이 전시 자체가 하나의 통합적인 정보라면, 나는 그 정보가 증발한 것 같아. 텍스트가 표현할 수 있는 만큼만 전달해 왔던 그 이전의 사례들과는 달라. 정보들이 영어나 한국어, 하와이어와 같은 언어라는 몸에 갇혀 있지만 그 끝이 이상하게도 올이 풀려서 evaporate 되는 거지. 공중에 떠다니는 거야. 그 속에서 시간을 보내다 보면 ‘결국은 네가 나한테 이 얘기를 해 주고 싶었구나’ 같은 감각을 느끼게 돼. 그러니까 그 순간순간을 따라가다 보면, 이 전시에 어느 정도까지 참여하게 되는 거지.

- 조현진: 제가 봐왔던 아카이브 전시에는, 하나의 큰 주제가 있고 그를 은유하는 자료나 작품들이 전시장에 놓여 그 주제를 채우고 있었어요. 은유라는 개념에서 보조 관념이 원관념에 붙어 원관념을 충실하게 만들어주는 것처럼요. 반면 이 전시에서는 두 관념 사이의 위계가 보이지 않았어요.

Room 1에서 제일 기억에 남았던 문장, ‘우리 모두가 한국 무용이나 한국의 뭘 아는건 아니었지만, 우리에게 한복이 있었기에 춤을 추었다.’ 이 전시를 보는 과정도 정말 이 문구처럼 느껴졌어요. 그 안에서 제가 스스로 어떤 해석을 하면서 궤적을 만들어갔을 때 감동이 왔었고요.

4. Idiosyncratic한 기록물로 이루어진 유예의 공간





2부


5. 역사의 밤이름을 부를 때 보이는 것을 따라서
- 재훈: 저는 콜라주 드로잉 작품 <Poor Kōlea counts nā pō mahina>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요. 자신의 하와이 동료 Drew Kahuʻāina Broderick의 얼렁뚱땅한 질문 “한국인(Kōlea)은 검은가슴물떼새(Kōlea)에서 유래한 것인가?”를 옮긴 자막과, 흡사 한복을 입은 사람처럼 보이는 검은가슴물떼새가 그려진 그림이 한 액자 안에서 짝지어진 결과물인데요. 발음의 유사성만을 근거로 (동떨어진 듯보이는) 두 대상 사이의 관계를 조직하여 제시하는 이 논리가... 작가가 세상이란 지식을 이해하는 방식인 것처럼 느껴졌거든요.

- 이주요: 사실 이 작품은 일종의 농담, 말 걸기지. ‘이거 아니야?’ 하는 것에 몸을 계속 준 거야. 우리가 이런 자리에서 농담처럼 흘려보낼 수 있는 수많은 것에 ‘몸’이 부여됐을 때, 의미심장해진다는 사실을 김성환은 잘 알거든. 그리고 그 기록이 결국에는 역사에서 하나의 페이지가 되는 것 역시 잘 알아. 역사에 대한 명확한 개념이 있기 때문에 이 세상의 수많은 것에 언제 어떻게 몸을 줘야 되는지를 잘 알고 있는 거지.

같은 맥락에서, 아까 이야기했던 핸드폰 카메라로 툭툭 찍은 책 사진들 있지. 그 행위는 인류 문명의 전달이야. ‘지식이란 이렇게 전달되어 왔다’라는 사실, 이 책이 내 앞에 놓이기까지 수많은 행위자가 있었다는 역사적 사실이 매우 감각적이고 캐주얼한 감수성으로 전달되잖아. 이 감수성은 김성환 작가의, 역사에 대한 깊은 관심을 보여주기도 해. 역사를 끊임없이 개별화해서 자기와 연결하려는 강한 성향이라 그래야 할까?


6. 우리가 처음 보는 언어들의 놀이터


7. 감독 김성환과 과정을 함께하는 일
- 재훈: 김성환이 이번 전시의 Room 1에 데려온 ‘필리아모오’나 ‘아이 포하쿠 출판사’가 바로 드류 브로데릭이 언급한 ‘하와이 트리엔날레 2022의 다른 참여 작가들’이에요. 그러니까 HT22를 통해서 만난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자신의 개인전에 가지고 온 것인데요.

저는 이 선택을, <머리는 머리의 부분> 이후에 하와이에서 만든 자기 작품의 맥락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HT22에서 (브로데릭의 시선과 몸을 통해) 만난 새로운 동료들이나 그들과 나눈 대화가 사전 맥락으로 깔려 있어야 한다는 의미로 이해했어요. 어떻게 보면 이 사람들이 있어야만 그 이후의 내 작품이 성립 가능하다고 말하는 것 같기도 했고요. 그러니까 제가 강조하고 싶은 점은, 김성환 본인이 ‘목격’한 하와이(예술가)들에 대한 수용도 그리고 본인이 속해 있는 맥락에 대한 흡수력이 대단하다.

- 이주요: 활발하다. 매우 활발하다. 그리고 여기다가 하나만 추가를 할게.

미술 쪽에서 온 작가들을 보면 작업을 하는 방식이 기본적으로 스튜디오 베이스야. 작가 혼자 작업실에서 시간을 보내며 작업을 계속해 나가는 식이거든. 하지만 김성환은 그렇지 않아. 김성환에게는 근본적으로 ‘감독’으로서의 아이덴티티가 강력하게 있어. 작업을 비디오 쪽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작품을 구현하는 방식이나 배치뿐만 아니라 공간에 대한 시선이나 운용 방식과 같은 출발점이 - 개인 작업으로부터 시작하고 성장해 온 나 같은 작가들과는 - 굉장히 다른 거지.

예를 들어, 자신이 원하는 것이 있을 때 그것을 구현해 줄 사람과 어떻게 커뮤니케이션하느냐의 문제는 김성환에게 있어 매우 중요해. 나는 그 사람과 어떤 시간을 보내고 있으며 그 구현의 보답으로 무엇을 교환할 것인가. 이 문제의 해결이 굉장히 오래 걸릴 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고 그렇겠지. 그 구현이 장기간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기도 하고.

- 하지민: 김성환의 전작들에는 본인 조카가 출연한 영상도 되게 많잖아요. 저는 그런 점만 봐도, 사실 가족이 작업에 출연한다는 게 어렵지 않은 선택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제일 어려운 선택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김성환 작업을 일대기처럼 늘어놓고 보면 그 애가 자라는 과정이 제 눈에도 보일 만큼 여러 번 나오고, 그 애가 자라면서 작가 본인의 작업도 바뀌죠. 그런데 그 출연이 가능하기까지 조카와의 관계도 상당히 중요했을 것 같거든요.


8. 창작을 해야만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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