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앞으로…… 집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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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손

햇빛이 있는 좋은 아침입니다.
건강히 잘 지내고 계시지요?

지금은 오후 5시 48분, 해가 저물기 시작하는 시간대입니다.
서울을 기준으로 해가 뜨기도 한다면 서울을 기준으로 해가 지기도 하겠지요.
새삼스레 스스로의 인생은 지금 여기의 나만이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지난 17일에는 DDP에서 열린 전시 <집합 이론>에 다녀왔습니다.
<집합 이론>은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디자이너 듀오 세 팀:
'슬기와 민', '신신', '홍은주 김형재'의 방법론과 관심사를 느슨하게 포착하고자 하는 전시예요.

본 전시의 특이한 점 하나는 출품작을 선정할 때, 디자이너들이 자율적으로 진행한 작업(ex. 슬기와 민의 미술 작업)은 최대한 배제했다는 것인데요.
아마 작업을 이루는 역학관계 내에 클라이언트가 분명히 존재하는 작업만 가져다 놓은 듯합니다.
디자이너로서 갖는 제약과 한계 안에서 그들의 태도가 어떻게 지속되고 변화하는지 이어보는 게 목표였다고 하네요.

사실 저는 디자인 자체에 큰 관심이 없으니 세 팀의 방법론이나 관심사가 어떻게 다른지, 조형적인 차이점에 대해서는 하나도 분간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저는 기존에 알고 있었던 전시, 이벤트, 출판물 등을 이 디자이너들과의 연관 속에서 바라볼 수 있었던 게 재미있었어요.

"아, 이거 이 사람들이 디자인한 거였구나."
"오, 한국에 이런 이벤트도 있었네?"
"어, 이거 전에 어디서 봤던 포스터다. 실물이 앞에 있네. 반갑다 포스터야."
"인쇄는 문성 인쇄와 으뜸프로세스에서 많이 하는구나."
(전시 팜플렛에 해당하는 포스터나 출판물들이 어디에서 인쇄된 것인지 인쇄소 정보까지 같이 적혀있더라고요)

이 전시의 목표는 세 디자이너 듀오의 지형도를 느슨하게나마 포착하려 하는 것이었지만
저에게는 한국 미술계에 어떤 프로젝트들이 있었나 두루 살펴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전시를 보러가기 전날 신신이라는 팀이 궁금해서 그들의 인터뷰를 한번 찾아보았는데요.

1. 네이버 디자인 프레스 'Oh! 크리에이터' 인터뷰
2. 현대카드 다이브 'LIVE DESIGNER TALK'

위 자료들을 보고 나니까 그들이 어떤 관점으로 디자인을 하는지 한 꼭지 정도는 이해가 가더군요.

예를 들어서 그들이 소개한 초기작 중 박준범 작가의 영상 작업을 책으로 도큐멘트 한 <멘체스터 프로젝트>(2011)가 있었습니다.
‘시각 이미지와 시간성, 사운드가 결합된 매체인 영상을 어떻게 책으로 풀어낼 수 있을까?’ 하는 고민으로부터 시작한 작업인데요. 신신은 이 작업에서 ‘(영상에서의) 시간의 흐름을 (책에서의) 종이의 두께로 번역’해보았다고 합니다.
책의 페이지가 넘어갈수록 영상 스틸컷이 쌓이는 것처럼 종이의 무게도 두꺼워지도록 설정했다고 해요.
생각해보면 일상생활에서 쓰이는 종이들은 대부분 비슷하게 가벼워서 그 무게나 물질성에 대해서 생각할 일이 잘 없더라고요.
만드는 사람의 입장에서 재료에 대한 이해도가 정말 중요하구나.. 하는 생각을 할 수 있었습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사진 작업을 하니, 인화지를 사용하는 사진 작업을 할 때 적용할 수 있는 부분이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이런 식으로 하나 정도 건진 것 같네요.

그리고 제가 전시를 봤던 그날에 신해옥 디자이너가 학생들을 데리고 전시장으로 수업을 오셨더라고요. 만든 사람 입장에서 자신의 주요작들에 대해 하나하나 설명을 해주셨는데요. 저는 같은 수업을 듣는 학생인 척 잘 숨어다니면서 재미있게 들었습니다. 😅
확실히 그냥 보는 것보다 만든 사람의 설명을 들으면서 보니 훨씬 복합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더군요.

아, 그리고 사진도 같이 찍었어요. ㅎㅎ
이런 식으로 그 작업이나 전시, 창작자와의 연결점이 하나라도 생기면 그 작업에 대해 호감도가 +1 되는 듯하더라고요. 조금 더 관심을 두게 됩니다. 무언가와 가까워지는 일에 있어 이 점이 몹시 중요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새삼스레 손은 무엇과 가까워지고자 하는지 궁금해지네요.
그럼 다음 메일에서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재훈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