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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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훈 안녕!

메일을 쓰기 시작할 즘엔 정말 지난 겨울 이후로 오랜만이군, 싶었는데 생각해보니까 우리 회의에서 봤더라! 아마 오늘도 곧 줌으로 인사하것네 ㅎㅎ
난 금요일에 마지막 시험이 끝나고서 슬슬 정신을 차리고 있소. 막학년에게 종강이란건 허울뿐인 것이니.. 사실 종강한 것 같지가 않긴 해.. 재훈은 이번이 마지막 학기인가?

내가 리뷰를 받아보고 싶다고 한 것이 자네에게 의외였던 일 같아서 당시 어쩌다 답장을 보내게 되었는지 대충 말해보자면… ⟪Bench Side⟫ 리뷰에 관한 네 스토리를 보기 전에 하상현 작가의 계정에서 전시 소식을 봤었어! 원래 그분의 퍼포먼스에 관심이 있었는데, 앞으로 기획 쪽 일에 전념하시기로 마음먹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난 후 처음 전해 들은 전시 소식이라 궁금한 마음이 컸던 것 같아. 언제쯤 보러 가면 좋을까 고민하던 중에 너가 이 전시를 리뷰하겠다는 스토리를 보게 되었던 것.

하상현 기획자에 대한 호기심이 첫 번째 이유였다면 한동안 골방작업만 하던 터라 오랜만에 들어간 인스타에서 다른 작업에 대해 이야기 나누자는 취지의 스토리를 보고는 반가웠던 마음이 다른 이유라고 볼 수 있을 듯 해요 홀홀


재훈은 ⟪Bench Side⟫의 소개 글을 보고 ‘퀴어성’이 전시의 주제로써 전시 전반에 어떻게 작용할지를 기대하며 보러 갔다고 했잖아, 나도 그 글을 보고 나서 ⟪Bench Side⟫에 대해 머릿속에서 비슷한 이미지를 그리게 되었다는 점에서는 공감했어. 다만 나한테는 그 지점이 전시에 대한 기대를 미적지근한 온도로 낮추는 요소였었던 것 같아.

확실히 하상현 기획자의 인스타에서 처음 ⟪Bench Side⟫의 홍보 글을 보고 나서 이 전시가 ‘퀴어’라는 주제를 가지고 기획되었고, 경기장의 테두리 밖에서 응시하는 아웃사이더의 시점을 다룰 것이라는 이미지가 그려졌어. 그리고 텍스트와 함께 업로드된 포스터의 이미지들 역시 내게는 역동적인 운동경기를 연상시켰던 터라 격렬한(?) 뉘앙스의 기획 혹은 작업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가지고 전시를 보러 가게 되었던 것 같아.

소개 글로부터 재훈과 비슷한 이미지를 연상했음에도(최소한 퀴어성이 다뤄지는 방향이나 정도에 대하여..?) 내 경우에 기대보다 우려가 컸던 건 개인적으로 좋다고 생각하는 작업의 스테이트먼트나 전시의 기획 방향에 대한 기호가 작용해서인 듯 해.

나는 어떤 전시에서 (특히 단체전은) 먼저 접하게 되는 텍스트가 작업들을 하나의 키워드로 카테고리화할 때 특히 많은 고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 하나의 주제로 통합해서 전시를 설명하면 텍스트가 연상하게 만드는 강한 이미지가 작업에 부착되어 버릴 수 있고, 그 전시의 작업들을 읽을 수 있는 다른 많은 여지를 잘라내게 되기도 하고, 관객이 작업으로부터 직접 이야기를 들어볼 기회를 앗아가는 일이 될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특히 다양한 작가가 참여한 전시에서 텍스트가 강력한 키워드를 먼저 언급하는 경우에는 종종 말에 눌려 작업이 납작하게 보인다고 느꼈던 경우가 있었기에… (그렇게 여겨졌던 전시 예시가 떠오르면 좋을 텐데 곧바로 떠오르질 않는군..)

이 전시에서도 ‘퀴어성’이라는 말이 떠오르게 만드는 강한 이미지가 과연 그 작업들을 잘 보이게 하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을까-하는 생각과 더불어 그렇게 하나의 카테고리로 획일화되어 묶일 수 있는 같은 색의 작업들만 모여있다면 되려 아쉬울 것 같다- 라는 생각도 들어서 글을 봤을 때 오히려 작업에 대한 기대를 조금 덜고 가려 했던 것 같아.

작가 입장에 서 있던 사람이 기획자로 참여하게 된 만큼 그런 지점에 대해서 더 많이 고민해 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 동시에 기획자로서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도 들었던 것 같아. 기획 단계에서 작업을 선정하고, 소개하기 위해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키워드는 필요한 것이니까-..!


이런 생각으로 전시를 보러 갔을 때 네가 말해준 것처럼 작업들은 퀴어에 대해 공격적으로 논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던 소개 글과는 거리가 있어 보였어. 그치만 ⟪Bench Side⟫라는 전시가 ‘퀴어작업, 퀴어전시’를 기대하게 만들었던 소개에 부응하는 전시였는지에 대해 생각해보았을 때, 네가 그러기에는 애매하다고 느꼈다고 말해줬던 지점들이 나한테는 오히려 전시를 흥미롭게 분석해 볼 수 있도록 작용했던 것 같아.

제일 처음 들어갔을 때 눈에 띈 건 최고은의 작업이었어. 전시장에서 공간을 차지하고 나누는 파이프들이 만들어 내는 능선이 참 좋았어. 파이프들이 서로 겹지고 벌려지고 기대면서 만드는 형태들이 몸의 움직임과 곡선을 떠올리게 하기도 했고. 처음엔 파이프들의 색감 때문에 건물을 위한 지지체였던 것을 전혀 몰랐는데 나중에 글을 읽고서야 알게 됐던 기억이 나.

파이프들을 지난 후엔 안초롱의 사진 작업이 보였어. 개인적으로 신체를 다루는 사진이나 평면에서 몸을 풍경처럼 다루는 이미지들을 좋아해서 그런지 안초롱의 사진 작업에서 볼 수 있는 익숙한 사람의 낯선 몸에 대한 이야기가 좋았던 것 같아. 아내가 남편의 몸을 낯설게 느끼는 순간에서 볼 수 있는 ‘내게 익숙한 몸이 낯설어져 버리는 순간’에서 처음으로 좋아했던 동성 친구에 대한 반신반의하던 감정에 결론이 났던 순간이 떠올랐어. 더 이상 친구의 손이 익숙하게 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니게 되고, 나만 아는 거리가 생기고 당연히 나와 (대충) 같던 몸이었던 것이 더 이상 아니게 될 때, 동시에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선택지가 나한테 있었음을 알게 된 때를 떠올리게 하는 작업을 보면서 나는 이 작업이 퀴어의 성질에 대해 논할 수 있는 작업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느꼈었던 것 같아. 그쯤부터 기획에 대해 생각해보면서 ‘노렸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그 다음에 눈에 들어왔던 건 찰흙 덩어리와 아크릴판이 연달아 끼워져 있는 김민훈의 창가 쪽 작업이었는데, 아크릴판과 찰흙 사이의 간격이 일정하게 반복되면서 움직임에 따라 앞의 찰흙의 환영이 만드는 환시가 정확히 뒤의 찰흙과 겹쳐서, 계속 앞에서 기우뚱거리면서 보게 만들었는데 귀여워서 계속 보게 되었던 기억이 나네. 어디에서 무언가를 구성할 것 같은 아크릴판의 형태가 반복되다 보니 일상이나 길에서 지나가다 눈을 붙잡는 작은 옥에 티(?)처럼 느껴졌던 것 같아.

그리고 입구 좌측에 놓인 철제 기둥 위에 올려진 깎은 나무 형상-은 받침대 같기도 하고, 그 부피감과 나무 그리고 밧줄의 조화가 배나 항구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기도 했어. 김민훈의 작업 중 부피가 큰 것들은 대체로 어디서 봤음 직한 구조들을 떠올릴 수 있게 하는 형상을 띄고 있었는데 작품을 보기 위해 기우뚱거리기도 하고, 아래로 지나가기도 하면서 관객이 몸을 사용하게끔 유도한다고 느껴졌어. 나도 그 작품들에서 직접적으로 ‘퀴어’와 맞닿은 이야기가 떠오르진 않았지만 어떠한 공간적 경험에 대한 기억을 상기하도록 촉발하는 형태들 자체가 흥미로웠던 것 같아. (기둥 아래 dick-의 형상으로 유추되는 작은 덩어리들이 직관적으로 연결되어 보이긴 했지만... 그것은 한국의 퀴어 미술을 생각해봤을 때 곧장 떠오르는 이미지였던지라 그냥 그렇게 대입시킬 수 있는 이미지보다는 다른 형태를 한 구조물에서 연상할 수 있는 이미지들이 더 재밌었어.)

윤정의의 작업은 ‘몸을 다루고 있다’라는 것이 느껴지는 부피감과 질감을 갖추고 있어서 몸덩어리를 옮겨놓은 것-으로 보였던 기억이 난다. 이승일의 작업은 고대 그리스 시기에 남성의 몸을 그려내던 방식이나 당시의 성문화, 그리고 유희 같은 것들을 떠올릴 수 있게 하는 도상들을 사용했다는 점에서 재훈이 적어주었던 해석에 대체로 공감해!


그리고 나 역시 전시를 보면서 은연 중에 작업들로부터 퀴어적 요소를 체크하게 됐는데... 다만 나는 작업이 ‘퀴어적인 것으로 묶이는가, 이 주제에 적합한 작업들인가’ 라고 했을 때, 마냥 그렇지 않았던 작업이 오히려 이 전시 안에 포함된 작업으로써는 더 좋았어.

그리고 재훈의 메일을 읽고 나서 다시 기획의 글을 살펴보았을 때, 글이 전시를 보기 전과는 꽤 다르게 보여서 흥미로웠어. 특히 퀴어가 ‘존재가 아닌 하나의 성질로써 논해지길 바랬다’는 말이 인상적으로 다가왔어. 작업과 작가에게 ‘퀴어’라는 태그가 붙게 될 때는 대체로 그 경험적인 성질보다는 주로 연상되는 아이콘적인 이미지들이나, 존재로서의 퀴어가 하는 이야기가 기대되는 것 같거든. 그렇지만 퀴어-작가가 하는 말이 모두 퀴어에 관한 이야기가 아닐 수도 있듯이 하나의 카테고리로 재단되기 쉬운 퀴어-작업이라는 명명하에 들어가게 되는 작업들을 바라볼 수 있는 다양한 여지를 만들고 싶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더라.

그렇게 생각해본다면 우리가 어떤 작업을 볼 때 이 작업이 정말 ‘퀴어적인가’를 체크하는 일이 역으로 또다른 선입견의 바운더리를 만드는 것 아닐까? ‘퀴어성‘을 논하는 작업군에 오로지 퀴어인 존재-에 대한 이야기만 포함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퀴어로 정체화하지 않은 사람도 공감할 수 있는 퀴어적인 순간에 대한 이야기도, 혹은 역으로 개인이 느낀 감각으로부터 확장한 이야기 속에서 퀴어적인 성질을 포착하는 시선 역시 그 안에 포함될 수 있잖아. 이런 범위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서 이 전시가 성질로써의 ’퀴어‘를 ‘벤치 사이드의 아웃사이더‘라는 더 포괄적인 시점으로 확장해서 다루었을지도 모르겠다.

기획에 적혀있던 내용이 소개 글에 있었다면 전시의 인상이 어떻게 달라졌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돼..! 그리고 나도 이 글을 쓰면서 계속 기획의 글을 분석하고 작업들을 보다 보니 뭔가 조금은 어거지로 설득된 상태로 생각하게 된다는 기분이 든다..... ㅋㅋㅋ 어쨌든 글보다 작업이 더 말이 많았던 점에서는 개인적으로 좋았지만 미묘한 그 아쉬움이 남기는 한 그런 전시였던 것 같아- 도록에서는 또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나중에 보고싶다.!


그리고 궁금해진 점: 재훈이 생각하는 ‘퀴어성’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전시에서 기대한 ‘퀴어성’은 어떠한 조건을 갖추었을 때 드러난다고 할 수 있을지 나도 이런 저런 생각을 해보게 되네.


그럼 우린 조만간 또 보십시다. 해피방학!

이정 드림

나쁜 관객

재훈

2023.06.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