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있었다는 사실을 기록하지 못한 사진을 바라보는 일

<

우찬에게 보낸 글인데 내가 답장해도 될련지 모르겠다.

우선 언제나 전시를 보고 섬세하게 작업을 봐줘서 고마워. 이번 전시에 참여하신 김유자 작가님에 대한 메일을 개별적으로 써준 점도 고맙고. 어떻게 보면 이번 전시를 함께 준비하며 작가님의 생각이나 과정을 좀 더 가깝게 들을 수 있었던 사람으로서, 좀 더 디테일한 부분에 대해 말을 덧붙이고자 답장을 보내.

지난 모임에서 재훈이 김유자 작가님의 사진 작업을 보고 "저렇게도 사진 작업을 할 수 있구나"라고 말했던 게 생각난다. 처음에 유자 작가님을 만났던 건 중간지점에서 'proxima b' 전시를 할 때였어. 함께 전시하는 작가들이 어떤 작업을 하고 있는 사람인가 궁금해서 방문했다고 하셨고, 그때도 사진에 대한 이야기를 줄곧 했어.

기억에 따르면, 작가님은 사진 매체가 끝났다는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우리가 정말 사진 매체의 모든 가능성을 도전해 본 걸까 궁금한 마음이 생겼다고 했어. 그때 proxim b에 참여했던 작가들의 시도-사진 이미지 그 자체보다는 사진을 설치하는 방식에 주안점을 두었던 작품들-도 사진을 액자로만 보여줬던 스스로가 새롭게 도전해 볼 수 있는 가능성이라고 하셨고. 음.. 이러한 작가님의 말을 듣고 '아.. 이 사람은 사진 매체에 정말 확신과 애정을 가지고 있구나..' 하고 생각했어.

시간이 꽤나 지나고 공간 운영진과 참여 작가가 처음으로 다 같이 만나서 그간의 작품을 공유하는 날이 왔을 때 나는 대체 유자 작가님이 어떤 작업을 가져올까 궁금해했었어. 유자 작가님의 순서가 되고 준비된 ppt 속 이미지를 봤을 때 나는 속으로 '엥? 저게 뭐지?' 하고 생각했어. '엥? 저게 뭐지?'를 자세히 말해보자면.. '나는 뭘 해야 하지?' 였던거 같아. 35mm로 찍은 듯한 거친 흑백 입자의 이미지는 너무나 아름답고 세련됐었거든. 그에 비해 설명은 균열, 오류? 무엇이 오류이고 어디에서 균열이 생긴걸까? 찍는 과정에서? 결과로?? x-ray를 통과한 필름은 작가가 사진을 찍을 때 뷰파인더로 보았고 계획했던 부분과 실제 이미지를 계속해서 달라지게 만들었어. 사진이 무언가를 정확하게 기록하여 보여준다는 환상이 진작에 끝났다면, 작가님이 자신의 사진에서 보지 못한 것을 관객에게 보여주며 이야기하려고 했던 바는 과연 무엇이었을지 곰곰히 생각해봤어.

우리는 어떤 순간에 사진기를 들까?

나는 '죽은 새를 땅에 묻는 상상' 이라는 제목의 사진이 유독 좋았어. 아파트 화단에서 죽은 까치를 들었을 때의 중량감. 영혼의 무게가 빠져나가 한없이 가벼워진 육체를 들고 그것을 다시 땅에 묻었을 때에 느꼈던 감각. 그때 느꼈을 안쓰러움과 가여움. 길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지 않게끔 어딘가에 잘 묻어주기... 그 작은 죽은 생명을 대하며 느꼈던 감각을 사진으로 표현할 때 차마 죽은 새를 찍을 수 없기에 비슷한 중량감을 가진 다른 것을 들고 그 대상을 상상하기. 이전 작업에서 작가가 누군가를 애도하고 추모하는 마음이 그 사진에서 느낄 수 있었고, 눈에 이미지로 남겨질 사진 너머 사진기를 듦으로써 사진기로 대상을 바라보면서 할 수 있는 역할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어.

(그런 관점에서 나는 작가님이 '균열'이라는 단어를 설명에서 사용하지 않았으면 했어. 사실 나는 작업을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균열을 지나칠 수 있는데 계속해서 집착하는 사람들 같거든. 그래서 작가님의 작업을 균열이라고 설명했을 때 너무 보편적인 설명처럼 느껴지는 점이 아쉽더라고.)

그 외에도 작가님은 사진이 '납작해서 가질 수 있는 매력'과 같이 사진 매체만이 발휘할 수 있는 힘을 믿고 있는 단단한 사람 같다는 생각을 했어. 옆에서 짧게나마 함께 했을 뿐인데 그 힘이 나에게도 응원이 된 것 같아.

주말 잘 마무리하고 내일 보자!